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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통신

제목 [프린지가 만난 예술가] (5) 유목적으로 표류하는, 안무가 곽고은 작성자 seoulfringe 작성일 2014-06-12
[프린지가 만난 예술가] (5) 유목적으로 표류하는, 안무가 곽고은
2014년 5월 9일 참석 : 곽고은, 퐁, 물비 기록 : 퐁


Ⅰ. 도시 서울을 관찰하는 산책자 <도시미생물프로젝트>
 
Q. 개인적으로 '곽고은 안무가'를 주목하고 있었는데요. 그 이유가 작가님의 <도시 미생물 프로젝트> 작업 때문이었어요. 도시 서울을 바라보는 관찰자적인 시선이 흥미로웠어요. 당시 제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나 미셸 드 세르토의 '도시 속에서 걷기' 같은 텍스트들을 재미있게 읽고 있던 터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춤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는 예술가가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거든요. <도시 미생물 프로젝트> 중 특히 <판매를 위한 춤>에서는 강남역 한복판에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인간 간판'들을 소재로 했는데, 이런 것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제가 졸업하고 처음으로 작품을 출품한 게 변방연극제였어요. <정글>이라는 작품이었는데, 그것부터가 사실 시작이었어요. 
 
제가 무용수로 활동을 할 때 LG아트센터에서 정영두 안무가의 <제 7의 인간>이라는 작품에 참여했었고, 그 전에는 강화정 연출가와 LIG아트홀 강남에서 작업을 했었어요. 그래서 거의 본의 아니게 강남 쪽을 일년 동안 출퇴근을 하게 된 거예요. 사실 강남역은 보통 모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러 가거나 할 때 가잖아요. 그런데 항상 연습을 하러 가면서 아침에 사람들 출근할 때 갔다가 퇴근할 때 저도 끝나서 오고, 이런 생활을 하면서 도시의 다른 ‘차원‘을 보고 느끼게 되었죠. 예를 들면 오늘 본 샵이 다음 날 가면 다른 샵으로 바뀌어 있다든지. 되게 마술같은 곳인거에요. 모든 것이 빠르고, 그리고 모든 것들이 포화 상태이고. 아무래도 연습을 하고 돌아오다보니 제가 많이 피곤해서 더 그랬겠지만 많은 것들이 저를 공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렇게 일년 동안 의도치 않게 강남역을 경험하면서 관찰을 하게 된 거예요. 혼자서 무슨 이방인 같이 그 길을 걸으며 이런 나의 상황과 상태로 솔로를 만들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강남역이라는 이 장소의 특수한 점들이 저에게는 흥미로웠거든요. 그 사람들 속에서 저는 항상 다른 사람이었어요. 저도 놀러 간 거였다면 그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겠지만, 목적성이 다르다 보니 항상 저는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항상 옷도 연습복 입고 맨날 힘든 상태로 돌아다니다 보니까. 그게 자연스럽게 솔로로 나오게 되었어요. 전광판이나 불빛, 소리들, 소음들, 사람들의 속도감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저한테 약간 공격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러면서 왠지 어떤 유령이 여기의 그런 흐름들을 조종하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강남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흐름이 패턴화되어 있잖아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사람들이 돌아가는 것처럼.
 
 
 변방연극제 <정글>

Q. 조종당하는 것처럼요?
 
네. '강남역에는 유령이 있고, 그 유령에 홀린 사람들이 거기서 조종당하고 있다'. 그 때는 그 생각이 강했어요. 당시 작업에 '볼레로'라는 음악을 사용을 했었는데, 뭔가 계속 돌아가는 패턴이 그 볼레로라는 음악이랑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안에서 휩싸이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고요. 그게 도시에 특정한, 강남역이라는 장소를 소재로 해서 했던 첫 작업이었고. 그 다음으로 연계된 도시에 대한 작업은 크리에이티브 바키와 공동작업에서 함께한 지하철 게릴라 퍼포먼스 영상이지요.
 
 
Q. <정글>, <판매를 위한 춤> solo, duet, trio버전을 묶어서 이후에 <도시미생물 프로젝트>로 이름을 붙인 건가요? 
 
네, 결과적으로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도시 미생물 프로젝트를 시리즈로 해서 하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 작업의 흐름을 보니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관심이 있고, 그래서 '아, 이건 도시에 대한 미시적인 관찰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생물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이건 시리즈로 엮을 수가 있겠다'하고 시리즈로 엮었죠.
 



<판매를 위한 춤>


Q. 제가 인터뷰 준비하면서 작가님 페이스북을 많이 염탐을 했어요. 그때 쓰셨던 말 중에서 제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적어봤는데, ‘도시미생물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내가 세상을 슬프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 작업은 슬픔을 극복하고 승화시키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라는 코멘트를 보고 이거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그런 우울감에서는 많이 지금은 많이 좀 벗어나 있는 상태이긴 해요. 그런데 그 '극복'이라는 것이 제게 중요한 문제였어요. 예술가로서 서울이라는 곳에서 살아남는 것도 어려운 부분이었고. 그리고 강남과 같은, 자본주의의 온상인 곳이 저한테 주는 불편함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할 때였던 것 같아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정말 밥 한 끼, 방세, 하루하루 살기도 어려운 삶인게 예술가들의 삶이잖아요. '이 자본주의 사회는 예술가들한테 너무 폭력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에 되게 화가 났었어요, 사실. 당시에는 제가 피해 받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감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자본에 합류되기는 싫고, 나한테 강요하는게 너무 많은 것 같고. 그걸 난 항상 이겨내고 스스로 마음을 잡고 살아야 하는. 그런 과정이 저의 20대에는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걸 아마 이겨내지 못했으면 지금까지 작업을 못했을 것 같아요. 그 극복의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와있지 않나 그런 것 같아요.
 
 
Q. <도시미생물 프로젝트>를 통해서 극복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극복이 되었나요?
 
옛날에는 그것들을 되게 혼자 못 이겨내서 힘들어 했었어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지금은 조금 멀리 볼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옛날에는 당장 내 눈 앞에 닥친 현실들을 이겨내기 위해 급급했었다면, 지금은 당장 다가오는 것들에 맞서지 않아도 이미 마음이 강해졌다고 할까요.  <정글> 작업하면서는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혼자 작업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 '이런 사회에서, 이런 시스템 안에서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항상 힘들었고요. 이제는 그보다 약간 올라서 있지 않나. 물론 지금도 솔직히 힘들거든요. 힘들지만 조금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Q. 작품으로 표현을 하는 행위가, 어떻게 보면 '말을 하는' 거잖아요. 그것 자체가 좀 해소가 될 수는 있겠네요. 
창작을 하고 끄집어내는 것 자체가.
 
해소가 되는 부분도 있을뿐더러, 제가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 조금 더 껍질을 까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약간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너무 그 문제에 대해서 저 혼자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이 작은 틀로만 저는 바라봤던 거에요. 그런데 거기서 좀 나와서 보니 그런 문제에서 제가 조금 더 넓게 크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건데, 옛날에는 진짜 좁은 어떤 프레임 안에서 혼자 아웅다웅하게 고민을 했던 것 같거든요. 옛날에는 '무조건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해', '버텨야해', '자본주의는 나쁜 거야' 그런 생각 때문에 혼자 힘들어 하고 스트레스 받고 했는데, 지금도 물론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저 쓸데없는 힘이 빠진 느낌이에요.
 

Ⅱ 방랑하는 예술가들의 <유목적 표류>
 
Q. 최근에는 음악가, 영상작가와 함께 특정 공간에서 즉흥 작업을 하는 <유목적 표류>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데요. 
이 프로젝트는 어떤 배경에서, 누구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도 궁금해요. 그 셋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이런 것들.
 
유목적 표류는 제가 어떤 쓸데없는 힘을 빼고, 약간 좀 내려놓게 되면서 제가 춤에 대해서, 공연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대해야 될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어요. 도시 미생물 프로젝트 끝내고 나서 전환기가 좀 왔었어요. 왜냐면 그 전에는 제가 생각하는 자본주의나 사회에 대한 얘기들을 개념적으로 작업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들을 했었거든요. 제가 춤을 6학년 때부터 췄으니 꽤 오랬동안 췄는데, 그러다 보니까 '나한테 춤이라는 건 뭐였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물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들은 도시에 대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거기에서 '나의 춤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메시지나 개념이나 이런 것들 보다 '내가 추는 춤'을 찾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도시에 대한 개념적인 작업들은 일단은 지금 중단을 하자, 나의 춤을 찾아봐야 겠다 하는 마음으로 유목적 표류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희 유목적 표류는 음악, 영상, 안무 이렇게 세 명이 있잖아요. 우연히 만났죠. '뭔가 결성하자' 해서 결성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 각자의 분야에서 하고 있던 친구들이 모이게 된 것에 가까워요. 민홍씨는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제가 LG아트센터에서 작업을 할 때,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은지씨가 보이스로 출연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 때 작업에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를 알게 되고, 콘서트를 가서 뒷풀이도 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민홍씨 자체도 되게 대중적인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실험적인 그룹도 하고 계시더라구요. 얘기를 들어 보니 고민하는 것이나 추구하는 방향, 앞으로 해보고 싶어하는 것들에 서로 접점이 있었어요.
 
영상하는 친구는 이미 민홍씨랑 같이 작업을 하는 친구였고, 그렇게 셋이서 뭔가 계획을 해서 짜맞추는 식의, 극장에서 하는 공연이 아니라 정말 어디서든 뭐든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냥, 그러니까 황무지에서 시작을 한 거예요. 처음에는 '이런 거 하자' 하고 시작을 한게 아니였어요. 일단 세 명이 모였으니 뭐든 하지 않겠냐, 라는 식이었죠. 첫 번째로는 효자동 한옥 게스트하우스에 문의를 해서 공연을 하게 됐어요. 저희가 직접 섭외를 했고, 그 곳에서도 '좋다, 손님들이 거의 외국인들이니까, 공연도 하면 좋죠' 해서 첫 번째 공연을 했어요.
 
저 같은 경우도 작업으로 즉흥을 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안무를 할 때 초반에 즉흥으로 해서 소스를 뽑아내서 그 다음에 안무 작업으로 연결되긴 했으나, 즉흥 자체를 방법으로 사용해서 공연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게 저에게도 낯선 방법이었고, 항상 뭔가 계획되어서 짜서, 극장으로 올라가는, 그런 게 아닌 것이 저한테는 황당한 일이 었어요.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사실. 그런데도 그냥 그게 계속계속계속계속 하다보니까 그것들이 또 쌓이게 되더라구요. 
 
유목적 표류 작업 같은 경우는, 매번의 수행적인 연습같아요. 그래서 그럼 연습을 공연으로 하냐? 하는 말이 나올 수 있겠지만, 그렇지만, 리허설 개념의 연습이 아니라, '그 날 그 날의, 그 날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가 저희는 가장 큰 목표이거든요. 어떤 한 날을 위해서 계속 연습하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말 그 날의 어떤 감각들을 세워서, 그 날 할 수 있는 것들을 잡아내서 해보자. 왜냐면 짜 맞춰진 공연도 그 날의 기운이라는 것에 따라서 달라지잖아요. 저는 유목적 표류를 통해서 '내가 갖고 있는 춤성이란 뭘까',  '내가 갖고 있는 흥미로운 춤은 뭘까'에 대해서 탐구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마도 이 과정들이 나중에 또 다시 극장 형식의 안무나 여러 가지 것들에 큰 재산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Q. 몇 번이나 했었죠? 유목적 표류가 그래도 꽤 많이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2013년에 시작이 된거죠?
 
그렇죠, 네. 한옥 공연하고, 카페에서 하고, 스트레인지 프룻이라는 홍대 클럽에서 두 번인가 하고, '불난집(안무가 곽고은의 집)'도 있었고... 숫자로 세기엔 좀 많아요. 왜냐면 저희가 네팔을 또 가서 영화를 만들었잖아요. 횟수는 사실 저희는 엄청 많은데...
 

Q.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유목적 표류 팀이 네팔을 다녀 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왜 네팔을 가게 되신 건지도 궁금하고 가서 공연도 하셨다고 하고, 필름도 찍으셨잖아요. 그래서 이런 작업들을 어떻게 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유목적 표류의 시작 자체도 그냥 '우연'이었잖아요. 그런데 즉흥이라는 것이 또 '우연성'에 기반을 하고 있고요. 유목적 표류는 우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해프닝들을 가지고 공연을 하게 돼요. 네팔 같은 경우는 저희가 유목적 표류를 몇 번 공연을 하고 난 후에, 색다른 곳에 가서 작업을 한 번 해보자고 해서 떠나게 됐어요. 거기가 특별한 무엇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싸니까' 결정을 한 거예요. 그래서 영상 하는 진수라는 친구랑 저랑 민홍씨랑 사진 작가 친구 한 분이 합류해서 같이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결정적으로는 되게 좋았던 시간이었어요. 사실 즉흥이라는 게, 세 명의 흐름이 같이 붙어야 잘 갈 수 있는 거잖아요.
 
 

Q. 아, <유목적 표류>는 안무 뿐 아니라 음악이나 영상까지도 전부 다 즉흥인가요?
 
네, 다. 민홍씨는 지난 번 <불난집> 공연에서도, 손님들이 들어올 때부터 그 소리들을 녹음을 했어요. 사람을이 농담하는 소리라든지, 현장의 소음들을 녹음을 해서 거기서 바로 믹싱을 하고 즉흥으로 음악을 하셨죠. 그래서 네팔도 즉흥적으로, 솔직히 즉흥적으로 '한 번 가보자'라고 해서 가게 됐어요. 한국에서 몇 번 공연을 해보니까 또 약간 다른 자극이 필요했던 거예요. 우연히 그때 스케줄이 다 맞아서 가게 됐는데 네팔이라는 나라가 너무 좋았던 건, '하면 안 되는것'이 별로 없는 나라에요. 춤이랑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식당에서 밥 먹다가도 제가 춤면서 테이블 올라가면 더 하라고 갖다 주는 친구들이거든요. 
 
그래서 네팔에서도 자연적으로 즉흥이 이루어졌고, 우리가 원하지도 않었는데 우연적인 해프닝들이 일어나서 그게 작업이 된 경우도 많았었어요. 그런데 즉흥이라는 게 그날그날 다 사라져 버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기록을 해야겠다 해서 시작한 게 영상기록인데, 그것도 영화를 만들자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그날그날 그 일들이 너무 재미있고 좋으니까. 기록도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제가 생각하는 안무에 대한 이미지들, 민홍씨가 생각하는 음악에 대한 부분 이런 것들을 또 영상으로 저도 카메라에 담고, 그런 것들을 엮어 낸 게 그런 것들을 영화 작업으로 해서 갖고 왔죠. <유목적 표류>가 뭐라고 딱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게 아직까지는 우연적인 일들로서 계속 이어져 갔었어요. <불난집> 공연도 그래요. 제 동생이 '이 집 불났으니까 누나 우리 고사라도 지내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우리가 예술하는 애들인데, 고사하면서 우리가 그냥 한 판 벌리자. 무당도 부르는데. 춤도 추고 음악도 하고.
 
 
Q. 유목적 표류의 방향성은?
 
'유목적 표류'가 반년 동안 꾸준하게 셀 수도 없는 공연들을, 작은 것부터 해 왔잖아요. 횟수로 치면 정말 많거든요. 사실 두 세달 준비해서 하는 공연 같으면 그렇게 못하는데. 이게 유지되기가 힘들 수도 있겠지만 항상, 수행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공연을 하자'고 말하고 있어요. 저는 그 점이 좋아요. 두 세달 준비하는 건 마음 먹고 해야 하지만, 이건 '계속한다'라는 마음만 먹으면 되니까.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걸 꾸준히 다들 잘 지켜왔어요. 그러다 보니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시간이 배반을 하지 않는 게, 점점 어떤 유목적 표류의 '스타일', '방법'들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만드는 작업'을 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서로 즉흥을 같이 하면서 서로 흐름들을 이제 좀 탔어요. 거기까지가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제가 사실 요새 흥행하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에 대한 회의감이 많았거든요. 요즘 콜라보 작업을 많이들 하잖아요.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작가들이 서로 친해지기도 힘들고, 어떤 흐름을 잡기도 어려운 시간이 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항상 잘 안되었었어요. 외국 작가들이 와서 같이 협업하고, 이런 작업들이 결과물 자체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을 해요. 그런데 지금 '유목적 표류'가 좋은 부분들은 반 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흐름들을 잡았고, 정말 같이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저는 협업은 그런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바로 만나서 일주일 만에 뭔가를 같이 만들어 내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다 파악을 했고, 서로 셋이사 말하지 않아도 흐름을 타고 갈 수 있는 것들이 생겨서. 뭔가 자부심이 있다면 '이제 협업이라는 것을 진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찾아낸 것들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보자'라고 해서 이제 시작해보려고 해요.
 
 
Q. 즉흥이 아니라 '다른' 것도 해보자라는?
 
즉흥적인 게 섞이긴 할 텐데, 이제껏 했던 것들에서 저희가 발견해낸 것들이 많아요. '이것 가지고 안무 작업을 해 보면 재미있겠다', 또는 민홍 씨도 '이거 가지고 음악으로 발전시키면 좋겠다' 라는 것들이요. 왜냐하면 즉흥 자체가 '소스'들을 발견해낼 수 있는 좋은 툴이잖아요. 
 

Q. 그렇죠. 우연하게 벌어지는 것들의 매력인 것 같아요. 제가 <불난집> 공연에서 느꼈던 재미가 바로 그런 것 같아요.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던 것? 일반적인 공연에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약속이 파기된 느낌이 저는 되게 좋았거든요.
 
맞아요. 그것도 저희가 처음에 얘기를 한 게, 정해두지 말자고 했었거든요. 예를 들면 7시에 공연을 시작하기로 정해놓는다면 각자마다 '흐름'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7시에 아직은 들어갈 수 있는 뭔가가 아직 안 왔어' 라고 한다면 '그럼 너는 시작하지마' 라는 것이죠. 만약 제가 2시에 뭔가 해보고 싶다면 그냥 2시에 '하는' 거에요. 그래서 실제로 그 날도 관객 분들이 오시기 전에 한 번 공연이 벌어졌었어요. 낮에 갑자기 한솔이(불난집 공연 당시 함께 즉흥을 했던 무용수)가 오빠랑 둘이서 얘기도 안했는데, 오빠는 음악을 막 하고 있었고, 한솔이도 갑자기 동해 가지고 공연이 한 판이 벌어진 거에요. 그런 것들? 그런 것들 좀 열어 놓는게 되게 좋았어요.
 
 


Q. '유목적 표류'가 나만의 춤'성(性)'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봤을 때 '곽고은'의 춤성을 어떻게 찾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 얘기는 참, 제 연대기는 아니지만, 제가 겪어온 큰 안무가들이 계세요. 제가 운 좋게 학부 때부터 너무 좋은 안무가들을 만났어요. 아무래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건, 함께 작업을 한 '사람들' 이잖아요. 학부 1학년 때 정영두 안무가를 처음 만나서 두댄스시어터를 2003년부터 시작을 했어요. 그 이후에 두댄스 하면서 또 안성수 픽업그룹에 들어가서 몇 년 동안 활동을 했었고, 그 다음에는 강화정 연출을 만났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 춤과 안무, 그런 것들이 그 세 사람을 떼어놓고 말할 수가 없어요.
 
정영두 안무가님도 제가 너무 존경하면서 작업하면서도 늘 확신을 갖고 '이 사람의 작업은 옳아'라고 생각을 했었고, 안성수 교수님도 작업이 너무 세련되고 자신만의 안무법이 있는 분이시잖아요. 그래서 작업을 하면서 그런 걸 많이 배웠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도시 미생물 프로젝트>까지는 그 분들의 힘으로 제가 작업을 해 왔던 것 같아요. 제가 배운 것들, 본 것들, 경험한 것들로요.
 
그런데 이제 저는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제 춤'성'을 찾고 싶다고 했던 것도 희한하게 제가 만들어내고 추는 춤은 어떻게 보면 안성수,강화정,정영두 이 분들의 작업을 통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작업은 해보지 않았지만 피나 바우쉬의 영향도 있을 것이구요. 그러니까 제가 좋아하는 것에서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 거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기에서 너무 벗어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것을 인정을 하되, 그것을 토대로 내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옛날에는 꼬리표 붙은 것처럼 '난 거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해!' 했었거든요. 그 분들은 무척 유명하시잖아요. 제가 아직도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존경하는 예술가이고, 저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저는 제 스스로 제 가지를 뻗어내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 때 힘든 시간들이 좀 왔었어요. 너무 좋은 안무가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러면 '내 것'은 뭘까? 하면서 떠나야 겠다는 마음으로 유목적 표류가 시작된 거예요.
 

Q. 준비한 것들이 아니라 연습 과정 자체가 공연이 되는 것 같은 그런 구조이잖아요. 그래서 지금 애기를 들어보면 그 반년동안 관객들은 그 연습 과정을 함께하는,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문득 궁금한 것은 연습과정인데 공연화해도 되는거야? 라는 고민에서 관객과의 관계는 어떻게 고민을 했는지도 궁금해요.
 
그 부분에서 저는 '감흥'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싶어요. 제가 물론 연습이라고 했지만 그건 굉장히 수행적인 연습이었어요.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가 위한 연습이 아닌, '그 날'의 연습이었어요. 신선한 커피를 '오늘의 커피'라고 하잖아요. 제 춤은 '오늘의 춤'인 거예요. 최대한 나는 '오늘의 춤'을 춰 보자. 오늘 오는 관객들이나 오늘의 제 상태, 그리고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의 춤'이 무엇일까. 그래서 제가 최대한 혼신의 힘을 다 해서 춤을 춰 냈을 때, 함께 하는 관객들과의 '감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좀 믿는 것 같아요. 
 
그건 제가 하용부 선생님께 굉장히 많이 배운 거예요. 그 <불난집>에서 추셨던 춤도 선생님 즉흥이셨어요. 사실 제가 원래 한국무용을 했었거든요.  한국무용의 춤성 이라는 건 즉흥이라는 것에 기반이 되어 있고, 그래서 즉흥이라는 게 잘 이루어져서 감흥이라는 게 생겨나는 것이 좋았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연습이 아니라 그날 그날 오늘의 춤, 오늘의 음악을 수행해내고 사람들과 함께 흐름을 타는 것들. 그건 오픈 스튜디오처럼 우리 '연습의 중간'을 보여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잖아요. 
 
 
Q. 매번 감흥이라는 게 다를 것 같은데 가장 좋았던 '감흥', 기억에 남는 유목적 표류 순간이 있다면?
 
솔직히 저희가 '이게 유목적 표류구나' 생각을 했던 게, 저희가 네팔에서 자주 밥을 먹던 식당 옆에 미싱하는 재봉사들이 일하고 있는, 옷 만드는 작은 공장 같은 곳이 있었어요. 저희가 그 친구들과 친해졌는데 그 친구들이 제가 식당에서 춤을 추고 공연을 하는 걸 보고 너무 좋아 하면서 저녁 파티 초대를 했는데, 결국 그날 저녁에 셔터를 내리고 밤에 술판이 벌어졌어요. 유목적표류의 음악 만드시는 민홍씨가 즉흥적으로 디제잉을 시작하고 신나게 같이 춤추고 놀았죠. 그래서 그 친구들이 '너네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하는 애들이냐?'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낮에 우리 일할 때도 놀러와서 같이 춤추자'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날 그 친구들 재봉 일 하고 있는데, 민홍씨가 들어가서 - 그때는 진수씨가 없었어요 - 그래서 민홍씨가 영상을 걸어놓고 들어가서 즉흥 음악을 하고, 저도 즉흥 춤을 추는 장면이 있거든요. 근데 그 날도 '그 날 몇 시에 갈게' 한 게 아니고 밥 먹다가 '어, 오늘 뭐 같이 놀아볼까' 해서 그 친구들이 일하고 있는데 슬쩍 들어갔어요. 민홍씨는 친구들이 재봉질을 하는 기계소리를 녹음기로 녹음을 했고 그 소리를 이용해 음악을 만들어갔어요. 민홍씨가 음악을 틀자마자 그곳에 있던 한 꼬마가  먼저 몸을 흔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그 꼬마랑 춤을 추다보니 사람들이 보러오고 모여서  그렇게 공연 아닌 공연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 거였어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커뮤니티 작업 같다고 볼 수 도 있겠지만, 그러한 의도도 목적도 없었어요. 그저 그 친구들과 친해져 술 한잔 마신 인연 인거죠. 예를 들어 저희가 그 사람들에게 '여기 애기도 같이 춤추게 해주세요'하고 미리 계획되어진 세팅을 했었다면 되게 어색하고 재미없었을 텐데, 희한하게 네팔은 모든 것들이 아무런 걸림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요. 
 
그 애기 자체도 우리 나라 아이들 같았으면 어른들이 일하고 있는데 옆에서 춤추는 게 가능할까? 이런 생각부터 또 낯선 이방인이 옆에서 춤 추고, 일하는 사람들은 계속 재봉틀에서 일하고 있고. 저희가 찍은 영상을 본 사람들은 저 사람들 계속 일 하라고 시켰냐고도 물어보는 거예요. 저희를 전혀 신경을 안 쓰니까. 저희는 사실 어떤 의도 하에 짜 맞춘 것들에 한계를 느꼈던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뭔가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거기서 발견되는 것들은 너무 차원이 다른 것들이었어요. 그 순간이 '유목적 표류'가 유랑 극단처럼 돌아다니는 와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이었고, 그게 저희의 영화 <기울어져 있어요>에도 담겨져 있어요.
 


  
Q. 그 영화, 정말 보고 싶어요.
 
사실 영화를 정말 보여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또 영화 작업을 할지는 모르는 거지만, 영화가 저희가 하고 있는 것들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작업이었어요. 즉흥이라는 게 그날 그 순간을 위한 수행이고, 또 그 순간 사라져 버리잖아요, 그래서 그것들을 잘 담아 기록하는 일 또한 너무 중요한 부분임을 실감 했어요. 
 
Q. 제가 '유목적 표류'에 끌리는 이유가, 계속해서 공연 공간에 변화한다는 점, 그리고 공간에 변할 때마다 그 내용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더라구요. 저는 웬만해서는 '재공연'을 보러 가지 않는 편인데, 이건 매번 새로운 공연이 되는 거잖아요. 게다가 내가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도 들고. 그렇지만 매번 '새로운 것'을 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에는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즉흥이라고 해서 좀 편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그냥 작업의 과정 자체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시간성 자체가 달라요. 지금이 저희가 하고 있는 작업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인거고, 짜서 하는 작업은 그 순간을 위해서 계속 준비를 하는 과정이잖아요. 그 시간성 자체가 너무 개념이 달라져서 그것 자체가 약간 지각 변동처럼, 저한테 일어났어요. 워낙 안성수 안무가, 정영두 안무가, 강화정 연출도, 정교함의 진수인 분들이세요. 그래서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 내기위해 보석을 섬세하게 세공해 내는 것 처럼 하나 하나씩 그림을 그려 가시죠. 그래서 저도 그거에 완전 반했었죠. 하지만 요즘 저에게 생겨난 흥미는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팔팔하게 살아 있는 상태로서 드러내는 거예요.
 
 
Q. 사실 그 동안 해왔던 시간성이나 방식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지금은 하고 계신거네요.
 
그렇죠. 제가 개념이 완전 달라졌죠. 그래서 사실, 그 전환점 이후로 제 모습 자체도 바뀌었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 전에는 약간 스마트해 보이고, 모범생같고, 항상 열심히 성실히 하는 곽고은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고, 지금은 조금 히피스러운 이미지로 많이들 보는 것 같아요.
 
 
Q. 저도 네팔 가셨을 때 올리신 사진 속 머리스타일을 보고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어요. 그 전에는 머리가 길었는데, 파격적으로 머리를 바꾸셔서 오늘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오늘은 또 다른 모습이 되셨네요. 볼 때 마다 느낌이 달라요. 작년 <불난집> 공연 때 뵈었는데, 그 때와도 많이 달라요.
 
네. 그 때만 해도 세 명 다 서로가 서로를 읽어 가는데 있어서 초반이었어요. 협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 초반이었기 때문에 저 자체도 긴장이 풀려서 확 나아갈 수 있었던 때가 아니었고. 사실 유목적 표류 세명의 작업이 서로 붙어가기 시작한 시점은 네팔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어요. 저희들이 처음에 유목적 표류를 시작하며 그런 얘기를 했어요. 다른 사람이 하는 작업에 '나 이거 할테니까 음악 이런 거 해주세요' 하는 식으로 간섭하지 말자.
 
서로가 하는 걸 존중을 해주고 서로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이거 마음에 안들어', '너 이것 좀 더 해봐' 이런 거 하지 말자고 약속을 한 거죠. 저희도 무수히 협업을 경험을 해 보았고, 콜라보 작업 때 싸움이 나는 게 그런 거 거든요. 그게 이상하게 자존심 싸움같은 게 좀 있어요. 오히려 작업에 도움도 안되는 싸움을 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물론 잘 되라고 싸우는 어떤 논쟁은 필요하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약간 '난 음악하는 사람이야', '나 무용하는 사람이야' 이러면서 서로 함께 어우러지기 어려운 지점들이 좀 있어요. 그래서 서로 약속을 하고, 그리고 진수씨같은 경우에 조금 뒤늦게 작업적으로 합류를 했어요. <불난 집> 프로젝트 까지만 해도 진수 씨는 영상 기록만 했었거든요. 그런데 네팔에 함께 다녀온 이후에 하게된 서울역284 공연에서 처음으로 진수씨가 작업으로 쑥 들어온 거에요.
 
 
Q. 아 맞아요. 저도 되게 좋더라구요. 이것도 그럼 즉흥으로 하신 거에요? 그리고 이게 전에는 전에 했던 것들은 미디어가 전면에 나오는 게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봤던 거에는 없었던 거 같거든요. 그래서 '여가의 기술' 공연 때는 미디어가 들어가면서 또 느낌이 되게 다르더라구요.
 
저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기다림이예요. 지금 결과물이 우리가 예상하는 뭐가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 기다리고, 계속 수행을 하자. 이렇게 쭉 믿고 하다보면, 그 기다림 속에서 자꾸 따라 붙어주는 것들이 있어요. '이번에 이거라도 좀 해 봐' 라고 푸쉬 할 수도 있었 겠지만, 다들 기다렸어요. 이 친구가 뭔가 또 걸리면 자연스럽게 자기 흐름을 타고 들어와서 뭔가 할거다. 그래서 결국 현재는 세명이 함께 작업으로 흐름을 타게 된거죠. 
 


유목적 표류 @ 서울역284 <여가의기술>
 

Q. 여가의 기술 작업 때는 들어오기로 얘기가 된 게 아닌데 들어온건가요?
 
그렇죠. 미리 '이번에 너는 이런거 해' 이런 얘기는 일단 없었고, 거기에 영화를 상영하는 큰 스크린이 있었잖아요. 진수씨가 처음에 그걸 딱 보더니 '어, 이번에 이거 가지고 뭔가 해볼게요' 하더니 리허설 날 카메라를 연결해서 뭔가를 보여줬어요. 어, 괜찮다! 해서 저도 들어가서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 해보면 어때?' 해서 '어, 누나. 이거 이렇게 같이 움직이니까 괜찮네요' 하면서 계속 함께 찾은 거 에요.
 
 
Q. 저는 사실 사전에 찍어 둔 영상인 줄 알았는데. 계속 보다 보니 즉흥이더라구요. 그래서 되게 재미있었어요. 
 
틀이 아예 없는 즉흥은 사실 볼만하진 않아요. 그러니까 그 전에 리허설을 하면서 어느 정도 큰 프레임을 구축을 해놓죠. 그런데 그게 너무 완결된 프레임이면 사실 그건 즉흥이라고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뭔가 순환할 수 있는 '구멍이 많은 프레임'을 만들어놓는 거예요. 그치만 그 프레임이 있는 건 되게 중요해요. 그게 없으면 그냥 산으로 가고 물로 가고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안 되고. 일단 큰 프레임은 만들어 놓지만 거기엔 구멍이 많아서,  관객들이 들어올 수도 있고 어느 날은 또 다른 뭐가 들어올 수 있고, 아무 상관이 없게끔. 공기 구멍이라 해야하나?
 
 
Q. 그 '프레임'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어떤 게 그런 프레임이 될 수 있을까요?
 
음, 그러니까 리허설 때 '영상이 이런 효과들을 주는구나'를 보고, 그걸 안무적으로는 이렇게 이용하고, 또 빛이 가해졌을 때 어떤 것들이 있고... 어느 정도 겉으로 하는 살짝의 '약속'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이 있어요. 뭔가를 '한다'고 약속을 하진 않고, 큰 틀만 잡으면 되는 거예요. 우리는 내일 스크린에서 나오는 이런 소스가 있고, 내 안무는 난 이런 소스가 있고, 음악은 이런 소스가 있고 그 큰 틀 안에서 공간은 이렇게 사용할 거고, 대략적인 큰 그림만 그려놓고, 그 큰 그림 안에서 완전 즉흥이 이루어지는 거라서 거기서 벗어날 수도 있고 들어올 수도 있고 하는 게 자유로워요. 그래서 어떤 큰 테두리만 잡아놓은 다음에 그 안에서 이제 재미있게 노는거죠. 그런데 그 틀을 말로는 사실 설명하기 어려워요. 왜냐면 우리가 리허설하면서 감이 오면, 그거 거든요. 서로 간의 감각으로 이뤄지는 것들이라.
 

Q. 사실 제가 오늘 여쭤보고 싶었던게, 또 콜라보레이션에 관한 거였어요. 제가 곽고은 작가님을 봤을 때, 흥미를 느꼈던 포인트가 첫 번째가 도시 작업이었고. 두번째로는 극장이 아닌 어떤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서 다른 뭔가를 시도하는 부분이었고. 세 번째로 궁금했던 건 타 장르와 협업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건축가하고도 협업 작업을 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사실 유목적 표류에서 '서로 맞춰주려고 협업하지 말자'는 아이디어가 건축가님 분들 덕분에 나온 거에요. 왜냐면 저희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함께 작업을 할 때 협업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를 하면서, 건축은 무용을 위해 뭔가 해줘야 할 것 같고 우리도 건축을 꼭 이용을 해서 꼭 '만나야' 할 것 같다, 모든 협업들이 그렇게 '만나려고' 너무 노력을 해서 재미가 없지 않을까라는 저희만의 결론이 도출이 되었고, 그래서 그때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우리 서로 만나지 않으려고 해보자'가 컨셉이었어요. 너무 만나려고, 붙으려 하지 않아도 함께 놀다보면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얽히면서 만나게 되어있거든요. 
 
그래서 협업에 대한 제 생각은 그래요. 시간이 길어야 하고, 서로 친해져야 하고 이런 과정을 꼭 겪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인위적인 방식은 좀... 요새 융복합도 또 유행하고 있잖아요. '어떻게든 만나야해' 하면서 그 만남을 너무 인위적으로 엮으려고 하고 그랬을 때 그 만남이 서로 재미없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나는 춤추는 사람으로서 내 춤이 내가 재미있어야 하고, 건축하는 사람도 건축하는 사람 입장으로서 자기들이 하는 것들이 재미있어야 해요. 무용을 하는 사람들이랑 협업을 할 때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뭔가를 만들어 주어야 하나, 그러면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하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 안에서 뭘 실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솔직히 재미있어서 하지 말라는 것도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걸 서로한테 맞추기 시작하다 보면 되게 피곤한 일이 되죠. 유목적 표류 협업도 약간 그런 식이에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매체들이 다르고 그래서 최대한 그것들을 활용하면서 재미있게 놀다보면 그 어쩔 수 없이 서로 요만한 머리털 하나라도 엮이게 되요. 그렇게 되는 협업과정이 저는 가장 자연스럽고 서로 재미있고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Q. 하나가 또 궁금했던 것은, 이건 좀 개인적인 궁금증에 가깝긴 한데요. 예전에 하셨던 인터뷰 내용을 봤어요. 전문사 분들과 무용 수업을 들을 때의 이야기였는데요. 곽고은 작가님은 6학년 때부터 무용을 하셨지만 그 수업에서 그렇지 않았던 분들을 만났고, 그 때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를 봤어요. 그때의 경험은 어떻게 도움이 되었고, 어떻게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과 자체가 학부생들은 무용을 하고 온 친구들이 많고 전문사 같은 경우는 다양한 베이스가 많았어요. 미술을 하거나, 불문과를 졸업한 분도 있었고. 그렇다 보니 그 분들이 1학년 실기 수업도 들어오고 그랬어요. 그 때 그 분들이 춤을 잘 못 추는 것을 보고 은근히 무시를 했었는데, 그러다가 되게 황당한 충격이 왔던 적이 있어요. 그분들이 발레 바를 하는데 뭔가 고민을 하고 계신 거예요. 저는 초등학교때부터 발레 바를 했으니까 그냥 플리에는 플리에고 플리에할 때는 팔이 내려가는 거고 당연하고 그냥 계속 자동적으로 춤을 추잖아요. 
 
하루는 미술을 전공하고 안무학과를 온 언니와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저한테 플리에할 때 팔이 이렇게 내려가고 이러는 게 이유가 뭐녜요. 저는 도저히 모르겠거든요. 그냥 이렇게 배웠어요. 그런데 그 언니는 그걸 교수님한테 물어보고 그리고 한국 무용이 왜 이게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고 호흡은 왜 이렇게 되는지 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런 고민들로 움직임의 원리들을 이해하면서 안무의 방식을 찾아가기 시작하는데, 순간 제가 바보된 느낌이 들면서 많이 뉘우쳤어요. 저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 몇 년동안 그냥 자동적으로 이게 뭔지도 모르고 배운 대로만 한 내가 진짜 바보구나. 저보다 더 움직임이나 춤에 대한 이해가 깊은 거예요. 댄서들은 수련한 기능들을 가지고 어떻게 수행하고 표현해 낼 것인가 고민을 해야 한다면. 안무가는 저런 방식의 고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몸의 구조나 움직임의 원리 그런 것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린 저한테는 너무 놀라움이었고. 이제껏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정말 바보처럼 생각없이 했구나. 안무를 하면 이런 이해가 나도 필요 할텐데. 그래서 그때 당시에 큰 쇼킹한 충격을 줬죠. 
 
강화정 연출님 같은 경우도 연극이 베이스이신 분이예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오셨는데, 20대 때부터 몸이 주는 착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신 거예요. 그래서 큰 비디오 테이프로, 그러니까 무용의 '무' 자도 모르셨던 분인데 몸이 주는 착시를 계속 거울을 놓고 자기를 찍어서 연구하신 분이에요. 그런데 아무래도 혼자서 연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창작과를 들어오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제가 강화정 연출가님과도 꾀 오랜기간 함께 작업을 했는데요, 어떤 안무가보다도 자기가 생각하는 메소드에 대한 몸의 이해가 엄청 깊은 분이세요. 그래서 그런 포스가 강한 분들 만나면서 저는 계속 자극들을 받게 되었죠. 
 
초반에는 그 놀라움에 그걸 흡수하느라 바빴어요. 너무 좋았고, 일단 저도 그때 배우는 단계였잖아요. 너무 운이 좋게도 한칼 하시는 작업자 분들이랑 작업을 하게 되어가지고 많이 배웠어요. 지금 이 시기는 그걸 또 부수고 제 가지를 뻗어 나가는 시기인거고. 20대 때  그시간들이 지금 제가 가진 이 힘이 기반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업자들이에요. 정말 턱 각도 요만큼 가지고도 그림이 달라지는 걸 아는 사람이었어요. 너무 집요해요. 정말 턱 각도가 조금만 틀어지면 그게 그림이 완전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런 정교한 사람들하고 작업을 하면서 저도 많이 정교해졌고, 보는 눈도 높아지게 되고, 그런데 그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닌게 되더라구요. 뭔가 이것들이 진짜 내 것이 되려면 이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의 한 걸음을 떼어야 하는데 그걸 못 해왔던 거에요. 
 
 
Q. 유목적 표류가 그 시작점이 되는 것 같네요.
 
네, 그렇죠. 계속 부수고 또 가고, 또 껍질을 벗어 부수고 또 가고,  그런 과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 유목적 표류를 통해서 뭔가 제 가지가 뻗어갈 나의 길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요즘 되게 좋아요. 작업을 또 어떻게 해 볼까 신나 있는 상태죠. 지금도 인터뷰 끝나고 회의를 하러 가는데요. 오늘 회의는 계획을 잡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하는 거에요. 어떤 것들을 해볼까 하고요.
 
 
곽고은 작가 아카이브 http://vimeo.com/user12844073
유목적 표류 https://www.facebook.com/nomadicdr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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