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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통신

제목 [프린지가 만난 예술가] (2) 거닐며 놀다, 연희감독 소경진 작성자 seoulfringe 작성일 2014-03-12


2013년 가을, 선유도에서 그들을 보았다.

하얀 옷에 요상한 탈을 쓴 한 무리의 사람들.

어디선가 그들은 나타났고, 사람들의 시선은 고정되었다.

그리고 20분 동안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혼이 빠지는경험을 했다.

그들이 궁금해졌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 사람, 그래 사람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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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가 만난 예술가] (2) 거닐며 놀다, 연희감독 소경진

 2014년 3월 7일 , 참석 : 소경진, 미소, 물비, 기록 : 물비

 

 

 

 

국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향 여수에서 풍물을 하시는 할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고, 4형제인데 모두가 배우지 않고도 악기를 다 칠 수가 있었어요, 결국 자연스러운 주위 환경 덕에 국악을 접할 수 있었던 거지요.

 

 

할아버지의 활동을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농악계 풍물 판에서는 상쇠가 나이가 들어서 그 역할을 못 하게 되면 대장이라고 해서 전체 판을 읽을 수 있는 리더가 있어요. 리더는 풍물 판 제를 모두 알고 있죠. 연로하셔서 악기 연주를 하기에는 힘이 부족하지만 모든 길을 꿰뚫고 있기에 그런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제가 갓난아기 때에 돌아가셨으니까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항상 저도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주위 환경 자체가 주변이 바다였고 아버지의 평생 직업이 어부이셨고, 집에 굿당이 있었죠. 어렸을 때부터 항상 봐 왔던 게 굿당이에요. 1주일에 한 번씩 동네 무당을 불러서 굿을 했었어요. 굿을 할 때에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물품은 쌀이고, 무당이 준비하는 것은 징과 꽹과리. 쌀 한 되와 오천 원. 아직도 기억나요. 아버지가 어부이시다 보니까 바다에 한번 나갈 때마다 이런 굿을 (소규모로 가정에 가장 밀접하게 들어와 있는 개인적인 굿)을 했던 거죠.

굿당이 따로 굿당이 아니라, 안방과 작은 방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방이 있어요. 쌀도 두고 다른 식료품도 두는 창고 같은 공간인데 그 공간이 자연스럽게 굿당이 되었고, 저의 아지트인 다락방에서 굿을 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봐 왔던 거죠.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1주일에 한 번씩 하다 보니까, 꽹과리, , 이런 소리가 익숙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4형제가 모두 악기를 배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자진모리장단, 휘모리장단 등을 냄비뚜껑을 잡고도 칠 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영향을 받다 보니까 좀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했고, 고등학교 때 조금 더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여수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악기로 레슨을 받으셨나요?


 그때까지 제가 다룰 수 있었던 악기는 주로 타악기였어요. 꽹과리 징 장구 같은 악기들이었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장구와 꽹과리, 장구 등으로 레슨을 받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거네요.


 꼭 그렇지 않았어요. 사실은 집안에서 반대가 엄청나게 심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지만, 다른 분야였었지요. 아버지의 생업에 도움이 되는 굿이었지만, 전라도 말로 당골래(무당) 되려고 하느냐 하시면서 종교적인 시선으로 굉장히 반대를 많이 하셨었죠. 그런데 고등학교 때, '이것'이 좋아서라기보다 '우리 것(전통)'이 너무 좋다는 것을 그때 느꼈기에 결정할 수 있었지요.

 

 

 

 

대학에서는 연희를 배우셨어요.

 

 네 맞아요. 제가 어디 가서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연희 1세대라는 것이에요. 1959년 서울대에 국악과가 처음 생겼는데, 그 이후로 연희과가 생긴 것은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어느 학교에도 있지 않았었어요. 그때만 해도 연희라는 말이 크게 대두하지도 않았었어요. 지금은 국악도 국악이지만 '연희'라는 말을 굉장히 잘 쓰고 있거든요. 어디 가든 자신 있게 연희 1세대라고 자부하고 있고요, 국악이 아닌 연희는 전통의 전반적인 부분을 굉장히 포괄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희 교육 1세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 첫 시작은 사물놀이로 시작했지만, 한예종 연희과를 1기로 들어가면서 저에게 있어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요.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연희과에 가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굉장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어요. 김덕수라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레슨을 받으면서 티켓을 한 장 받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이었어요. 그때 제가 3층 꼭대기에서 개미만 하게 보이는 김덕수를 바라보면서, '내가 저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가졌었고, 마침 연희과의 교수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건 당연히 목표가 되었죠. 지방에서만 있다가, 작은 티켓 하나가 '김덕수라는 사람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평생 롤 모델로 삼을만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지요.

    

 

지금도 롤모델은 변함이 없나요?


 창작그룹 노니의 연희감독으로 있지만, 대학 졸업 후 10년간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있었어요. 한때의 제 꿈이 이제는 고개만 살짝 돌리면 옆에 있는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나름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또 다른 꿈이 있어요. 연희과에 가기 전에는 연희를 잘 몰랐지만, 학교에 들어가면서 연희를 이해하게 되고, 연희가 이렇게 대단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계속 배우고 있고, 느끼고 있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제가 속해 있는 창작그룹 노니 역시 기본 베이스는 전통연희이기도 하거든요. 제 삶이 되어버렸죠. 연희라는 것이 이제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계시다가 창작그룹 노니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출발점은 똑같았어요. 2004년도에 졸업하고, 2005년부터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입사하고, 동시에 노니를 시작하게 되었죠. 김경희 대표를 만나서 함께 우연히 어떤 작품을 같이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이러니한 게 한 곳은 전통을 베이스로 그대로 작업을 하는 곳이고, 또 다른 한 곳은 그 전통을 베이스로 창작적인 작업들을 계속하는 곳인데, 두 가지가 공존하는 삶을 10년간 살아왔었죠. 재미있어요. 그 지점이.

    

 

그 작품이 어떤 작품인가요.


 '꼭두'라는 작품이었어요. 우리나라 남사당패에 보면 줄타기, 풍물놀이, 탈놀이(덧베기), 살판, 버나, 꼭두각시 놀음(전통인형극) 6가지 종류가 있어요. 그중 꼭두각시놀음에 해당하는 작품이죠. 노니라는 뜻도 찾아보면 사전적으로 나무인형 '꼭두'라는 뜻이 있어요. 그 노니 첫 작품 자체가 창작그룹 노니의 이름이 되었죠. 잊혀지는 인형을 재해석하고 대중에게 알려보자 라는 게 첫 출발점이었어요.

 

 

 

 

꼭두작품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인형극이었는데, 음악은 모두 라이브로 혼자 연주를 다 했고, 인형극 막 안에서 여러 가지 인형극이 펼쳐지고 옆에서는 그림자극이 펼쳐지는 다채로운 작품이었어요. 전반적으로 봤을 때, 무대미술이라는 기법이 전통극에 들어왔죠. 극장 자체를 가지고 다녔었는데, 전통적인 것을 보는 것만이 아닌, 관객이 극장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공연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극장의 벽, 천장, 무대 모든 것을 무대 기술적으로 표현했죠. 무대미술을 전통극에 녹여내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 10년 전 그때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전통만 가지고 창작했더라면 심심했을 수 있는데, 무대미술이 다가오면서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게 노니의 출발이었죠. 전통 자체가 흐른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전통은 곧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거든요. 메커니즘으로 따지자면,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가지고 접근했는데,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결국 노니가 시대에 잘 맞는 아날로그적인 진화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또 지금 세대에게 맞는 것을 하는 게 이 시대에 맞는 전통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시대에 맞는 노니가 결국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죠.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창작그룹 노니를 10년간 병행하며 갈등도 많았을 것 같아요.


 좋은 지적이에요. 김덕수 사물놀이패는 직장이었고, 노니는 제가 꿈꾸었던 또 다른 비전을 가지고 같이 만든 팀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지점이 항상 있었어요. 그때마다 도움을 주신 분이 김덕수 선생님이었어요. '경진이 네가 이런 창작 작업을 하는 것을 존중한다. 그게 네가 내 옆에 있는 이유이다.' 라는 말을 항상 해주셨어요. 지금도 계속 좋게 봐주시고 계시고요.

노니가 초반에는 공연보다 많이 했던 것이 레지던시였는데, 그때 어떤 회의에 오랫동안 투어를 나가 있었어도 김덕수 선생님이 많이 이해해주셨어요. 오히려 노니에서의 경험을 통해 배운 점을 가지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와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신 선생님의 마인드에 감사드려요. 전통의 문제점 중에 하나가, 팔 안으로 감싸 안는 거 에요. 지연 학연, , 줄 등을 매우 중요시하는데, 그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김덕수 선생님은 저에게 굉장히 빛과 소금 같은 선생님이시죠. 온고이지신이란 말을 자주 하시거든요. 내 것을 잘 알고 새것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님 당신도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시도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런 영향 또한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노니에서 맡은 역할이 연희감독이에요. 생소한 단어입니다. 역할과 뜻을 소개해주세요.


 창작그룹 노니는 전통 연희 다시보기 연작시리즈를 계속 하고 있어요. 첫 번째 작품(꼭두)으로, 꼭두각시놀음의 인형극을 재해석했었어요. 두 번째 작품(도깨비불 린:)이 전통 연희 중에 전통 그림자극을 재해석한 작품이었어요. 그림 영회극이라고 하죠. 세 번째가 전통의 길놀이. 길놀이를 재해석한 바람노리라는 작품이 있었지요. 그리고 네 번째가 솟대 놀음을 재해석한 ‘11=추락남매‘. 다섯 번째 역시 솟대 놀음을 재해석한 몽키떈쓰‘. 작품들 모두 각자 다른 성격들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전통연희를 베이스로 작품을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연희가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죠. 노니에서는 연희에 대한 시스템을 계속 만들고 있고, 또 좋은 방향성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었어요. 음악감독도 기술감독도 아닌 연희감독이란 용어가 생소한 용어이긴 하지만, 연희적 장르를 개척하고 싶고 또 연희작품을 계속 만들고자 하는 방향성이 담겨있는 용어에요. 저희 역시도 아직 헷갈리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도 연희 베이스로 하는 작품 안에서 연희감독이라는 역할들을 계속 하고 싶어요. 많은 연희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들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안무는 안무 음악은 음악 이런 식이지 연희 없더라고요. 제대로 연희를 바라보고 제대로 이해하고 연희작품 안에서 연희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보고 싶어요. 공부를 많이 해야겠죠.

 연희감독의 역할은 굉장히 포괄적이에요. 연희에서 쓰이는 음악, 연희에 대한 의식적인 부분. 움직임 모든 걸 포함하고 있죠. 연희 자체가 멀티적인 것이기 때문에 감독 역할 역시 멀티적이에요.

 

연출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연희에 전문화된 연출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네 맞습니다.

    

 

작품들이 거리에서의 작품이 많아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통연희 자체가 실내공연이 아니에요. 밖에서 큰 포장을 치고, 혹은 그늘막을 쳐서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개념이었죠. 공간이라는 자체가 마당, 장터, 공터와 같은 관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에서 많이 했었거든요. 우리 사물놀이도 그랬잖아요. 자연스럽게 시대 흐름을 따라서 극장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극장을 벗어나서 다시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이란 장르에 대한 관심이에요. 어떤 공간에 맞는 음악, 움직임, 연희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요. 여전히 극장이라는 공간이 매우 매력적이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공간,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햇볕 자체가 주는 조명,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살아 숨 쉬며 보는 공간이 좋다는 생각을 하는데, 언젠가는 또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서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시기가 올 수도 있겠지요.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춰,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거리에서 공연하다 보면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은데, 그중 음악적 어려움은?


 바깥에서의 음악은 정말 쉽지 않죠. 야외에서 하는 모든 공연은 대부분은 대형 스피커를 이용하거나 MR을 틀어놓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야외에서 라이브로 공연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창작그룹 노니는 어쨌든 올 라이브를 추구하고 있어요. 결국, 문제는 소리 전달 부분이죠. 연희자끼리도 안 들리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은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 재미는 있는 것 같아요. 야외에서 내 귀에 들리는 나의 연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실내공간은 어떻게든 소리를 만들거든요. 마이크를 대거나 기계를 사용하거나 해서 소리를 만드는데, 야외는 그렇지 않아요. 특히 라이브 연주를 했을 때에는. 저희 공연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임도 자유로워서 소리와 자연의 상호작용이 많아요. 그러다 보면 바람에 실려 오는 소리도 좋고, 햇빛에 말려서 오는 가죽 소리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자연스러움 때문에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소리를 만드는 것 같아요. 전통 악기는 인간적인 악기들이 많잖아요. 재료가 가죽, 나무, 열매 이러다 보니까, 전자선을 타고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보니까, 더 자연스럽지 않나 싶어요. 그 소리에 익숙해지면 다른 것은 더 힘든 것 같아요. 귀를 때리는 소리보다 자연스러운 소리가 더 아름답다 느껴요. 언젠가 관객들도 그것을 알아줄 거로 생각하고 있고. 물론 어려움은 있습니다(웃음).

    

 

공연하실 때 사용하는 악기를 보면 특이한 악기가 많아요. 악기들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기계적인 음, 전자적인 음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자연에 있는 자연 그대로의 악기는 무엇일까부터 시작했어요. 나아가 그것들이 음악화되어서 모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레인 스틱이라는 악기는 수세미처럼 기다란 열매를 말린 거죠. 열매가 말라서 그 안에 가득 찬 마른 씨들이 움직이면 빗소리를 낸다고 해서 레인 스틱이거든요. 또 다른 열매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악기도 있어요. 우리 전통 도구 중 키라는 바구니에 콩을 담아서 흔들면 파도소리가 나는 거 에요. 바구니가 깊으면 더 깊은 파도소리가 나고, 깊이가 낮은 대신 옆으로 퍼지면 저 멀리 있는 파도소리가 나기도 하고. 정두라는 악기도 있는데, 정두는 밥그릇이에요. 놋으로 된 밥그릇. 정두 입구를 돌리면 묘한 소리가 나죠. 그런 것들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분명 있더라고요. 더 크게 더 많이를 추구하는 엄청난 사운드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이들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 멀리서 오는 바람이 흐르고 물이 흐르는 진정성 있는 소리, 잔잔한 소리가 그들을 이기더라고요. 관객들도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고. 이런 악기들만 모아서 음악을 해보고, 그런 음악에 맞는 움직임을 해보고, 그 음악에 맞는 스토리를 만들어보자 라는 취지가 컸었지요. 지금도 여전히 그런 악기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가진 순수 악기들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자연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은 것 같아요. 질리지도 않고. 연속성 지속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 자연스러운 악기는 오래가면 갈수록 가슴을 더 파고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특별히 힘들었거나 기억에 남는.


 모두 제 자식 같지만, 첫 작품 꼭두같은 경우는 호흡이 굉장히 길었어요. 노니가 생기기 이전, 학교에서 김경희 대표를 만나 연희에 관해 얘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3~4년 동안 작품을 준비했어요. 처음에 나무 깎는 것부터 시작했죠. 나무라는 게 깎으면 딱 완성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손때와 땀이 묻고 그런 과정에서 생명력이 드러나는 것이거든요. 한 땀 한 땀 만든 것이 꼭두였어요. 너무나 많이 힘들었었고, 초반의 모든 열정을 다 쏟아 부었던 것도 꼭두라는 작품이었어요. ‘꼭두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보다 오히려 해외의 좋은 무대에서 많은 공연을 했었고, ‘꼭두와 더불어 아무것도 아닌 창작그룹 노니라는 단체가 스타트가 좋았어요.

노니의 시작에 관해 얘기하며 언급했지만, 텐트극장을 가지고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았었죠. ‘꼭두공연 셋업을 하는데, 새벽부터 시작해서 꼬박 하루가 걸려요. 거의 베틀로 옷 하나를 짜는 기분으로 하는 셋업을 필요로 했었죠. 그러다 보니 셋업은 배우들도 다 해요. 종이를 모두 잘라서 붙여야 하는 등 한 땀 한 땀 손 가는 것들이 너무 많다 보니 배우들도 다 무대를 설치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조립만 하면 딱 완성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어요.

 한 번은 셋업을 해놨는데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천막을 실내공간에 설치하기도 하고, 야외에서도 설치하기도 했었는데, 야외에서 할 때에는 바람이 불잖아요. 꼬박 하루 걸려서 셋업을 다 해놨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면 무대가 저 멀리 공처럼 굴러다니는 거예요. 고정 다 해놨는데, 그날 밤에 공연 올려야 하는데, 시간은 없는데.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걸 두 번 한 적도 있어요. 또 한 번은 폭풍우가 쏟아지는데, 공연은 해야 하고, 관객을 받아야 하니 급하게 공연장을 덮을 차이를 가로 12m, 세로 20m의 방수제 천막을 직접 제작했어요. 이렇게 큰 천막은 처음 볼 정도로 제대로 쳤었죠. 하나의 실내를 만든다는 기분으로. 힘들었던 만큼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입니다. ‘꼭두.

 

 

 

 

창작그룹 노니는 유닛으로도 활동한다고 들었습니다. 작년에 참여하셨던 거닐며 노닐다콘서트는 어느 유닛의 활동인가요?

 

 연희 유닛의 활동입니다. 음악유닛, 미술유닛, 연희유닛이 있어요. 연희 유닛은 악과 무를 베이스로 하죠. 전통에 가까운 것을 해보자 해서 연희유닛을 만들게 되었고요, 연희를 베이스로 하는, 어떻게 보면 제일 먼저 생겨나야 했었는데, 가장 마지막에 생긴 유닛입니다. 그만큼 가장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팀이기도 해요. 유닛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일 년 됐죠. 일 년 동안 많은 실험을 했어요. 그 중심에 음악은 자연이 가진 소리를 그대로 음악에 담아보자.’ 라는 취지가 있고, 몸짓은 여러 몸짓을 한곳에 모아서 이 시대에 맞는 몸짓을 찾아보자.‘라는 취지가 있어요.

    

 

연희 유닛이 지금 하고 있거나 준비하는 활동이 있을까요?


 전통연희를 베이스로 가지고 음악회를 해보자는 뜻에서, 3월 말에 논현동에서 하는 靑春 ? !‘이라는 음악축제에 창작그룹 노니 이름으로 연희 유닛이 출격합니다. ‘화려하고 강한 음악이 아닌 진정성 있고 자연에서 얻은 소리를 가지고 접근해보자.’라는 취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셔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연희 유닛이 연주하는 곡은 직접 작곡하시는 건가요? 연주곡이 모두, 제목도 재미있고, 성격도 다 다른 것 같습니다. 이런 곡들은 어떤 작업과정으로 이루어지나요.

 

 네. 모두 직접 만드는 곡입니다. 공동창작을 하고 있고, 연희감독인 제 주도하에 텍스트 시놉시스처럼 전통리듬에 모티브를 주면 다른 친구들이 발전시키고, 솔로도 해보고, 합주도 해보면서 공동창작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어요. 전문 작곡자를 두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방법과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작곡할 때에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아이디어는 일단 전통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연희 1세대로서 후배들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새로운 것, 서양적인 것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나쁘다는 게 절대 아니라, 너무 많이 의지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아날로그적 것들을 잘 헤쳐서 보면, 그게 더 모던할 때가 있거든요. 그 관점에서 출발해요. 악기를 보면 너무 많은 부분에서 서양악기가 들어와 있어요. 타악기 같은 경우는 젬베, 카혼 같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고, 기타와 건반은 말할 것도 없죠. 사실 꽹과리, , 장구, 북은 요즘 이미 많이 안 써요. 사물놀이는 동아리에서만 하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 하는 사물놀이가 있지, 꽹과리, , 장구, 북만 가지고 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은 이제 드물어요. 극장에서 꽹과리, , 장구, 북만을 가지고 공연한다는 것은 진부하다며, 거기에 드럼이라도 들어간다든지 뭔가 더 들어가야 재미있지 않느냐는 인식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네 가지 악기로 승부 하고 싶어요. 찾아보고 복원하는 마음으로 잘 닦다 보면 그것들이 그렇게 모던할 수 없어요. 그러다 보면 선조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지점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죠. 몇 천 년의 역사 안에서 만들어졌다 생각하면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전통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서양의 것을 쫓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볼 필요도 있겠다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저희 팀은 준비하고 있어요. 굳이 색깔로 따지자면 화이트.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음악. 연희 중심의 선율이 없는 음악. 꽹과리, , 장구, 북이 메인이 될 수 있는 연희의 기본 악기를 중심으로 접근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 안에 좀 더 자연스러운 악기를 더하기도 하지요.

 

 

노니가 아닌 소경진씨 개인 활동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사물놀이패를 나오는 순간부터 김덕수 선생님의 그늘이 아닌, 노니의 운영자로서 또 연희감독으로서가 아닌, 소경진으로서 작업을 하려고 꾸준히 준비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작년 가을부터 시드니의 'Legs on the wall' 이라는 'aerial work(공중작업)'을 하는 서커스 단체와 함께하는 작업이에요. 작년에 한 달 동안 워크숍을 하고 왔는데, 그 주제가 사물놀이입니다. ‘사물놀이 이야기라는 동화책의 스토리를 가지고, 호주 서커스 배우와 제가 작업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나우의 주최로 글로벌 작업을 하는 건데, 끝난 게 아니라 개발 단계입니다. 내년에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기로 되어있고요.

, 올 초에 한 달간 이란의 테헤란에 가서, 이슬람 배우들과 함께 이슬람 문화의 전통적인 느낌을 가미한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한국적인 텍스트를 가지고 그들과 만나서 안무도 하고 음악도 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고 왔어요. 그들과도 역시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로 약속을 했어요. 전통연주자 소경진으로서 다른 밴드들과의 콜라보 작업도 계속 연습 중이고, 공연할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아요. 연희를 가지고 전통 연희를 베이스로 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통연희 중심의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어요. 꼭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해요. 작년에 토요문화학교-꿈다락 학교를 하면서 성과가 좋았어요. 그 연장으로 전통연희를 베이스로 하는 통합교육시스템을 만들려 하고 있어요. 전통의 교육들은 대부분 재미없는 교육들이 많거든요. 발표수준에서 끝나는 것도 많고. 창의적인 연희 교육을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희학자로서의 목표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이런 말은 조심스럽지만, 국악 중에 기악파트, 판소리파트, 한국무용이 있고, 사물놀이 타악파트가 있는데, 타악파트가 가장 아래라는 인식이 있거든요. 타악도 아닌 연희는 더 밑이었어요. 연희는 풍물, 탈춤, 무속, (전문적으로 남사당 등 유랑하면서 공연하는) 전문예인집단 등 대단히 큰 범주를 가지고 있죠. 그중 하나가 무속인데, 어떻게 무당이 대학을 와서 교육을 해요. 그런 건 전혀 있을 수 없었어요. 탈춤 자체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곳이 없었어요. 있더라도 한국 무용과 안에서 한 장르로 살짝 가르치는 정도만 있었죠. 전통연희 광대들이 하는 저급 것이라는 이미지가 정말 있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도 있고요. 이건 정말 큰 병폐라고 생각해요.

 

 사실 연희라는 것은 인간의 삶과 연계되어 있어요. 사람이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의 희로애락이 담긴 것이 연희이거든요. 다분히 인간적으로 삶의 밑에서 끊임없이 움직였던 것이 연희인데, 교육으로 들어오려니 반대도 많고 늘 가장 아래에 있었기에 올라오기가 어려워요. 아쉽지만 지금도 그래요. 연희라는 정립 자체도 아직 안 되어 있어요. 지금의 연희는 국문학자, 민속학자 같은 사람들이 행위는 하지 않고, 글로서 조사해서 만든 개념이에요. 연희학, 연희학자라는 개념은 사실 없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희를 제대로 바라봐줄 수 있는 게 필요해요. 제도권 안에서의 교육은 그렇지 못하고 있거든요. 물론 전통을 똑같이 답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작적인 부분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생각해요. 본인만의 목소리가 아닌 똑같이 따라 해야 하는 것이 가장 문제에요. 전통을 지키는 데는 중요하겠지만, 발전시키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통이 가진 좋은 컨텐츠들이 교육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전통을 기반으로 발전시켜야 해요. 지금은 모든 분야에 이수자들이 있고, 그 이수자들을 중심으로 답습하며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학습자들이 살 자리가 없다는 거 에요. 시대가 원하는 예술은 그런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죠. 학습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가진 새로운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졸업하고 펼칠 수 있는 장이 생겨야, 더불어 연희가 발전하고 계승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지금 하시고 있는 사소한 고민부터 진지한 고민까지 듣고 싶습니다.

 

 전통연희가 저에게는 숙제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축제에요. 전통 연희가 굉장히 왕성했을 시절을 상상해보곤 해요. 제가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굿당을 바라봤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삶에서 연희를 바라보고, 저희 부모님은 그 안에서 기도하는 것과 같은. 작은 축제들도 많았을 거 에요. 진정한 축제는 이런 것들이라 생각해요. 그것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마을 안에서 함께 참여하고 축하해주고 했던 작은 축제들, 결혼식은 말할 것도 없고, 호상이면 그것도 작은 축제가 되었던 연희 축제의 흐름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전통연희의 흐름이 2014년의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회귀했으면 좋겠어요. 제 역할이 그런 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요. 너무 과한가요? (웃음) 거기에 창작그룹 노니가 조금 더 기폭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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