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다 같은 언어로도 소통이 안 되는 이유
일시 : 2011.11.15. (화)
장소 :프린지 마루
완벽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오늘은 <철학자 선생님>들이 많이 등장하셨습니다. 그들은 각자 사유하고 분석하는 과정 속에서 공통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 사이에 완전한 소통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소통을 제대로 해 보자 모였건만ㆍ 이 허무한 결론은 무엇일까요. <진짜 눈앞에 있는 선생님>은 뒤통수를 맞아 얼떨떨해하는 저희에게 다시 차근차근 설명하셨습니다.
 
<철학이란 건ㆍ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지 세상에 없는 것을 어느 날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자들은 깊은 사유를 통해 언어로써 조합해 온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이 사유들을 정리하는 것이 철학의 주된 흐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난 주 워크숍 때는 문학작품과 게임을 통해 어렴풋이 소통을 가로막는 요인을 알았다면ㆍ 이번 주에는 철학자들의 사유를 가늠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유명하시다는 미셸 푸코(Paul Michel Foucault)와 언어학자 알란 크루스(D. Alan Cruse)의 소통과 언어관련 서적에서 본격적인 <소통 방해 요인>을 살펴보았습니다. 참고서적은 전자는 <말과 사물>ㆍ 후자는 <언어의 의미>입니다. 유용한 정보야 책 아니고서도 얼마든지ㆍ 더 쉽고 빠른 방법으로 알짜배기만 알 수도 있지만 굳이 책을 통해 맥락을 짚어보는 까닭은 선생님이 <헌 책방 주인>이어서만은 아닐 겁니다. 저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이 어마어마한 책들을 정독할 일이 과연 올까 싶지만 책이야말로 천천히 호흡하며 행간을 살피며 저자와 교류하고 내 것으로 취하는 데는 탁월한 매개체이죠. 다만ㆍ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바로 <번역>입니다. 전문 번역가가 아니라 학자들이 번역하게 되면서ㆍ 자신들의 이해수준으로 번역한 사례가 많다고 하니ㆍ 비전공자나 일반인들은 더욱 미궁에 빠지는 거죠. 앗ㆍ 그러고 보니 번역 또한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군요.
 
아무튼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철학에 관한 내용을 들려주셨습니다. <서양 근대 이전의 철학은 사물을 중심으로 한 사유였다면 근대 이후에는 운동을 중심으로 한 사유로 변화하였습니다.> 예를 들면ㆍ 근대 이전에는 <컵은 무엇인가.>이었다면ㆍ 근대 이후에는 <컵을 들고 물을 마신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겁니다. 즉ㆍ 하나의 대상을 놓고 사유하던 방식에서 다각도로 사유하는 방식이 된 것이죠. 이 다각도는 각각 독립된 구조를 갖고 있어 서로 연결되는 <순화>를 띄기도 합니다. 사유의 방식이 계속 왔다갔다하는 거죠. 1-2회 워크숍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있음>과 <없음>도 이에 해당합니다. 때문에 흩어져있거나 이상하게 엮인 사고를 독자들은 통합적으로 유추하고 사고해야합니다. 게다가 정답은 없고ㆍ 끊임없이 문제제기만 하니 더욱 더 적극적인 사유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에고.
(*서양철학은 생각의 변천사이기에 시대순대로 살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버틀렌드 러셀의 <서양철학사>ㆍ 철학아카데미에서 출간한 <현대철학의 모험>ㆍ 그리고 곰브리치의 <서양철학사> 책을 추천하셨습니다. ...도전하세요!)
 
 
미셸푸코는 <말>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고 항상 움직이는 것을ㆍ <사물>에서 정지해 있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흩어집니다. 지난 시간에 나왔던 불통의 원인들 : 계급ㆍ 욕망ㆍ 두려움ㆍ 범위 등이 말과 사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게 하는 것들이죠. 또한 우리는 무언가와 소통하기 이전에 자신의 <앎>과 <믿음> (일명 자기도 모르게 형성된 개인의 배경지식)이라 대한 확실성으로 인해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무척 새로웠습니다. 이런 것들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소통을 하기 위한 준비가 이뤄지는 것인데ㆍ 이게 쉽지가 않다는 거 말 안 해도 잘 아시겠죠?
 
알란 크루스는 더욱 좌절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합니다. <완벽한 읽기와 쓰기ㆍ 말하기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50프로 정도만 알아듣는다고 하죠. 그러니까 나머지 언어의 절반은 잉여라는 겁니다. 선생님이 정리해 온 도식을 통해 의사소통 흐름을 보았습니다. 발신자가 기호화하여 전달신호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수신자가 수신신호로 바꿔 해독하게 된다는ㆍ 쉽고도 어려운 말인데 문제는 이 흐름에 있습니다. 즉ㆍ 말이나 글자ㆍ 제스처 등으로 주고받는 신호가 흐르는 통로에 소음(noise)가 발생하면서 전달신호와 수신신호는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이 소음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소음들을 하나씩 짚어보았습니다. 휭 지나가는 오토바이ㆍ 듣도보도 못한 외국어ㆍ 의미가 전혀 다른 몸짓.... 알란 크루스는 이를 도상성(의태어나 사물묘사 등)ㆍ 관습성(문화차이)ㆍ 불연속성(사투리 같은)ㆍ 언어왜곡 등이 소음의 종류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절반만 알아듣는 이유로는 수신자가 이해를 못 했거나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큽니다. 절반 이상으로 알아들었다는 경우도 극히 일부 있다고 하는데ㆍ 사실 어쩌면 기만일 수도 있다는 이이를 제기해 봐야 한다고 합니다.
 
소통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참으로 많이 넘쳐나네요. 철학자들 또한 절망감이 말도 못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답이 없음을 감지했음에도 계속 답을 찾으려 생각을 이어오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사실 오늘 내용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ㆍ 실천을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요. 행동하는 지식인들이 있기에 더욱 힘을 내게 되었다는 프랑스 68혁명에서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공부도 해야하고ㆍ 공부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학구열로 치솟았던 이번 네 번째 워크숍을 통해 모두 탄력 받으셨기를 바랍니다(?)
-스카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