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일, 지난 2월 17일의 첫 번째 자리에 이어 <프린지 블랙리스트를 말하다>의 두 번째 토론회가 있었다. 첫 번째 모임이 블랙리스트 피해 당사자로서의 서울프린지네트워크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시작한 자리였다면, 두 번째 모임은 “블랙리스트 사태를 함께 겪은 동료들과”라는 주제로 각자의 현장에서 블랙리스트를 함께 ‘겪고 있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현재진행형의 블랙리스트
굳이 앞 문장에서 ‘겪고 있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처럼, 앞선 정권 시기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으로서의 블랙리스트는 여러 예술가와 생태계, 기관, 제도 및 정책 등에 수많은 갈래의 흔적을 남기며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 블랙리스트의 작동을 통해 지원배제, 검열 등을 직접 겪은 피해당사자들에겐 여전히 제대로 된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이번 토론회에서 발제된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의 사례처럼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못한 피해사례도 무수히 많다. 또 함께 발제된 계원예대의 사례처럼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처벌 없이 요직으로 이동해 해당 현장과 기존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피해를 입히고 있는 사례도 벌어지고 있다.
열거하기도 어려운 각각의 개별 피해사례 외에도 블랙리스트가 남겨놓은 흔적들은 정책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블랙리스트 작동과 함께 문예위에서 사라진 다원예술지원 정책은 여전히 폐지된 상태로 남아있으며, 예술인들의 기금사용을 한 눈에 살펴보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측되는’ e나라도움은 현장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에도 흔들림 없이 지원행정 안에 정착했다. 블랙리스트의 작동과 함께 폐지되었던 문예위의 ‘예술창작발표공간지원사업’은 다년에서 단년으로, 지원금은 감액된 채 기존보다 퇴행된 형태의 ‘특성화극장지원사업’으로 변형되어 남아있으며, 어쩌면 이 또한 ‘추측’일 수도 있지만 화이트리스트의 작동으로 의심되어 온 ‘늘푸른연극제’와 ‘대한민국연극제’는 한국연극협회의 미정산 문제, 참여팀 배제 문제 등 해당 축제에 대한 수많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해당 축제의 정당성에 대한 어떠한 생산적 논의도 없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더 커다란 문제는 그 ‘사건’ 이후 달라진 수많은 제도와 관계들의 대부분이 그 이후 사실적인 검증과 후속조치 없이 무수한 추측과 오해의 형태로 현장에 흩뿌려져 있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알려진 아이공의 사례처럼 자신들의 배제 사실을 이후 기사로서야 접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현장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집단이 블랙리스트의 피해자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 당혹감은 내가 함께한 공연이 올라가는 연극제가 블랙리스트의 반사 이익으로 작동하는 연극제임 알았을 때의 당혹감과 맞닿아 있다. 내가 지금 지원서를 쓰고 있는 지원트랙과 그 기금이 다뤄지는 행정시스템이 예술가의 검열을 용이하게 하려는 시도의 산물임을 알았을 때, 어쩌면 이러한 사실들이 오히려 명확하지도 않고 ‘추측’과 ‘의심’으로 남아있을 때, 사실을 확인하기에는 이미 시간이 지나가버렸거나 아니면 혼자서 그 사실을 찾아내야 할 때, 그런데 그 사실을 찾는 것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보이지 않을 때, 한 명의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회귀한 불신의 시대, 그 말의 간극
지난 3월 8일, 내가 몸담고 있는 혜화동1번지에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백서 읽기를 중심으로 하는 내부 간담회가 있었다. 진상조사위에 참여한 예술가와 함께 ‘사건’으로서의 블랙리스트에서 혜화동1번지가 어떻게 등재되었고,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백서를 통해 살펴보는 자리였다. 백서를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몇몇 부분에선 참여자들의 한숨이 나왔고, 몇몇 부분에선 실소가 나왔다. 중간중간 이어진 토론과정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으나, ‘다시 불신의 시대로 회귀했다’는 말이 뇌리에 남았다.
2월 17일의 프린지의 1차 토론회가 끝나고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동료 창작자와 블랙리스트를 체감하는 시점이 서로 다르다는 간극을 느낀 일이 있었다. 2015년 10월, 대학로에선 ‘팝업시어터’사태가 벌어지고, 2017년 1월 광화문에선 블랙리스트에 저항하는 연극인들이 세운 임시 공공극장 ‘블랙텐트’가 열렸다. 그 시기에 나는 안산의 극단에서 활동 중이었는데,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한 극작가가 안산에 내려와 술자리를 가지며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대학로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며 연대를 제안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며칠 후 극단 회의에 해당 사안이 안건으로 올라왔고, 대다수의 단원들은 거리감을 표현했다. 각 단원이 자신의 생각대로 개별적으로 사태에 대응하기로 했고, 개인적으로 블랙텐트에 약간의 후원금을 보냈던 기억 외에는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그 시기의 구체적인 기억이 나에게는 없다.
동료 창작자와 나는 2016년 ‘화학작용’이라는 플랫폼에서 함께 작업한 기억이 있는데, 팝업시어터 사태와 블랙텐트 사이의 시점이었다. 그 당시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젊은 창작자들에겐 블랙리스트와 검열은 커다란 화두였다. 하지만 나는 갓 연출을 시작한, 대학로 밖 극단의 일원이었으며 당시 플랫폼의 많은 창작자들은 나보다 좀 더 일찍 대학로에서 활동을 시작한 동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안타깝게도 그 화두를 그 동료들과 나눌 기회는 생각보다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난 토론회 후의 담소 중에 당시의 이야기가 나왔고 이러한 경험을 나누던 중에 이러한 간극이 발견되었다. ‘다시 회귀한 불신의 시대’가, 특히 ‘다시 회귀’라는 말이 뇌리에 남은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블랙리스트 토론회에서 종종 언급되는 ‘그 동안 쌓아왔던 공공기관과의 신뢰 훼손’이라는 말, 토론회 때 아이공의 발제문에 언급된 ‘2000년대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다라는 정책기조로 엄청나게 많은 문화예술이 꽃을 피웠다.’라는 문장, 언젠가 문예위 간담회에서 들었던 ‘한팩 시절의 대학로예술극장과 아르코예술극장’에 대한 긍정적 회고 등을 접할 때 늘 그런 간극이 나에겐 있었다.
‘사건’으로서의 블랙리스트, 그리고 이후의 블랙리스트, 그리고 다음
대학로와 지역의 간극, 정보격차에 대한 이야기, 세대 간의 경험차이나 잘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 혹은 당시 행동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괴감과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피해자와 주변부 사이의 경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글을 쓰며 내가 겪고 있는 지금의 블랙리스트에 닿아가고 있다.
예술활동이 진행되고, 확장되어갈수록 ‘사건’으로서의 블랙리스트는 멀어지는데 블랙리스트와 내가 닿는 면은 오히려 늘어갔다. 미투 운동으로 알게 된 동료들은 블랙리스트의 한복판을 지나온 동료들이기도 했으며, 지금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은 팝업시어터 사태의 당사자들이기도 했다. 또 한국연극협회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토론회에서도 여지없이 블랙리스트로 인한 제도 변화는 다뤄져야 했으며, 현재 내가 기금을 받고 있는 지원제도는 2015년 이후 개편된 수많은 지원제도의 일부이다. 2017년 가을, ‘아르코와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신진과 원로를 엮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획에 섭외를 받은 적도 있었고, 무언가 중요한 맥락은 빠져있는 듯한 공공 주도의 간담회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올 초 문제가 제기되었던 문체부의 연극의 해 추진 또한 그 의도에서 블랙리스트와의 연결점을 찾는 현장의 반응 또한 그 당시의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내가 겪고 있는 현장은 아니지만, 계원예대의 학생들이 감당하고 있는 싸움도 블랙리스트에 맞닿아 있다.
본래 이 리뷰는 두 번째 자리를 함께한 소회를 밝히는 리뷰여야 했으나, 쉽사리 글을 시작하지 못하고 3월 8일의 혜화동1번지의 내부간담회와 3월 12일의 “블랙리스트 이후의 블랙리스트에 대해”까지 함께하고 와서야 책상에 앉게 되었다. 이어진 두 자리에서 힌트를 얻어 리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3월 8일의 간담회에 참석한 혜화동1번지 7기동인은 2019년 혜화동1번지라는 이름의 동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혜화동1번지는 2014년 2월 국정원 분석자료 문건에 블랙리스트와 관련하여 ‘이념 편향성 연극으로 물의를 빚은 극단’으로 명명되며 처음으로 등재된다. 그 5년의 간극을 두고 간담회 참석자들은 당시 피해를 입은 피해단체의 구성원이 아닌 지금의 예술가로 블랙리스트에 접근해야 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함을 명확히 했다. 간담회 또한 자연스럽게 혜화동1번지에 국한되지 않은 블랙리스트 이후 현재의 제도와 미결된 후속조치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어진 3월 12일의 토론회에서도 “블랙리스트 이후의 블랙리스트”라는 토론회 제목처럼 이후에 대한 논의와 질문이 이어졌다. 논의 과정에서 ‘사건으로서의 블랙리스트와 이후의 블랙리스트’, ‘새로운 단체’, ‘새로운 대응’, ‘다음 세대’, ‘이후 세대’와 같은 단어들이 발화되었다. 그리고 지난 세 번의 토론회에서는 늘 해당 토론회가 현재의 서울프린지네트워크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임이 밝혀졌으며, 매 진행발언과 질의마다 프린지네트워크가 블랙리스트를 지금의 관점으로 다루려는 노력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각 토론회 중간, ‘블랙리스트의 피로감’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흘러나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 세월호 기획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세월호 기획을 준비하며 갖은 내부간담회에서도 ‘세월호의 피로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피로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종종 죄책감과 이어졌다.
하지만 다음이 있다. 희망적인 말이 아니라, 여전히 닿아있고 나와의 접촉면은 더 넓어져 가기 때문이다. ‘사건’과 지금의 간극 사이에는 변하지 않은 현실과 구체적인 제도들, 관계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사건’과는 멀지 몰라도, 그 이후 펼쳐지는 수많은 개별적 사건들은 나의 활동을 넓혀갈 수록 나와 충돌하고, 만나게 된다. 그 사건에 맞닿은 피해자를 만나게 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펼치는 새로운 국면에 빠지게 되며, 고쳐지지 않은 제도 위에서 생활과 예술은 지속되어야 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공연을 기획하며 이젠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내가 제안 받은 작업과 쓰고 있는 지원서가 어떤 맥락에서 출발했는지 스스로 검증해야 하며, 내가 출근하는 작업장에서 드러나지 않은 가해자와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가 섞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다음은 있다.
세월호 준비를 위한 내부간담회에 초청된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의 한 작가 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겪은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간담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겪은 세월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가장 가까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합니다”. 그리고 피로감이 아닌 다음이 시작되었다. 3월 12일의 토론회에서 사회를 맞은 서울프린지네트워크의 불나방PD의 여는 멘트를 기억을 재구성해 인용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우리는 이 토론회를 블랙리스트에 대해 공부하는 자리, 파악하는 자리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이야기되지 않았고, 들어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다고 판단하였고, 이 토론회를 시작으로 프린지와 동료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를 우리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이어 지속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를 바랍니다.”
출처: https://indienbob.tistory.com/1158?category=226689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