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프린지가 블랙리스트를 말한다] 2. 잘 모르겠는데요, 피해자예요?
작성일 2020.02.18 / 작성자 seoulfringe
[프린지가 블랙리스트를 말한다]
2. 잘 모르겠는데요, 피해자예요?
글_김민수(엠케이,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스태프)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하며 자취방을 뺐다. 본가의 소파는 안락했다. 지금도 노트북을 안고 반쯤 누워있다. TV에선 영화 <기생충>의 경제효과에 대한 MBN뉴스가 한창이다. 내 옆에 앉은 경상도 출신 60대 보수정당 지지자 두 분이 알면 고개를 저을 글을 쓰려니 난방비라도 더 보태야 하나하는 부채감이 든다. ‘20대 남성의 보수화’ 같은 단어가 어울릴 형제와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더 끌어당긴다. 내가 만드는 축제도 돈이 되긴 하냐는 질문에 대충 웃어 넘긴다. 무서운 게 많을 때 는 모르는 척, 해맑은 척하는 게 좋은 탈출구가 되어준다.
법은 잘 모르겠는데요, 누가 피해자예요?
<김기춘 조윤선 등 대법원의 파기환송 긴급 토론회>에 다녀왔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판결에서 직권남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은 아니라며 고등법원 으로 파기환송한 대법원판결을 규탄하는 토론회였다. 법학자, 역사학자, 예술가 등이 모여 나누는 얘기들을 절반쯤만 알아들으면서 앉아있었다.
블랙리스트 사태에 적용된 주된 죄목은 ‘직권남용죄’였던 것 같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아 래 공무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를 얘기 나누었다. 법은 물론 어려 운 한자어만 나와도 사고가 느려지는 나는 더듬거리는 기분으로 많은 이슈를 건너다볼 수 있었다.
대법원은 김기춘 전 실장 등 피고인들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해 지원배제를 지시한 것은 직권 남 용에 해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통령부터 문체부 산하 기관까지 내려오는 국가기관 간 공모를 중심에 두지 않아 이를 ‘국가의 범죄’ 로 보지 못했다. 그에 따라 ‘형법 상 직권남용죄’에 집중하며, 이미 작성된 명단을 송부하는 행위는 의무 없는 일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명단송부는 지원배제를 위한 일련의 행위로 연결되어있다. 또한 김기춘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이 퇴임한 이후 범행에 대해 공범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였으나 퇴임 이후에도 그가 지시한 검열 시스템은 열심히 기능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침착하게 화가 나 있었다. 대법원판결에서 헌법 체계의 근본적인 법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든지, 헌법 자체가 권리를 좁게 해석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든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이라는 이름의 형법이 필요하다든지 많은 얘기가 오고 갔다.
그 와중에 나의 의아함은, 이 사건의 피해자가 예술인이 아니라 공무원이라는 것이었다. 상급 공 무원이 그 아래 공무원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건지 아닌 건지 싸우는 모양새가 너 무 이상했다. 그건 마치 내 자취방에 도둑이 들어 빈털터리가 됐는데, 도둑질을 도와야 했던 운전기사의 권리가 침해당한 것인지 아닌 지로 재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 운전기사를 응원하는 것뿐이라는 기분이 들자, 문득 응원받는 공무원이라는 장래희망이 생기 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보냄으로써 지원을 배제 시킨 것이 ‘의무 없는 일이 아니’라고 보고 파기했다는 건 더 큰 의아함이었다. 그러니까 이게…의무는 아니지만…의무 없는 일은 또 아니고… 그러니까 뭐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오고 갔다. 도대체가 잘 모르겠는 것 투성이였다.
예술은 잘 모르겠는데요, 당신도 피해자예요?
프린지 2년차 스탭인 나는, 불과 두어 달 전부터 프린지가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나왔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온통 우습고 슬픈 얘기들이었다. 함께 소통해왔던 예술위 직원을 걱정하는 지원배 제 대상자가 있었고, 내부적인 성찰을 먼저 해왔던 이들이 있었다. 자기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서 라도 이어가겠다는 무모함과 그 와중에 다원예술계를 복원하기 위해 고민하는 순수함이 있었다. 앞에서 얘기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도대체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토론자로 함께한 신은실 영화 평론가는 ‘순수예술에서 지원사업배제는 굶어 죽으라는 것과 같다’ 고 얘기했다. 그것은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뿐 아닌, 내가 손을 얹고 있는 공연예술계와도 닿아있 는 얘기였다. 아니, 그것은 예술계를 넘어 공적 자금이 투여되는 모든 사회 전반에 연결돼있었다. 그럼에도, 대법관 소수의견 중엔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문화예술인에게 보조금 지원을 배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내가 예술을 잘 몰라 이런 문장에 마음속 균열을 느끼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사실 이런 시선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순수예술이나 기초예술 같은 단어가 허울일 뿐이라는 칼 럼에서, 내가 만든 잡지나 공연, 전시를 보고 누가 그걸 돈 주고 보겠느냐는 가족의 목소리에서, 어쩌면 내 내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언젠가 내가 예술 따위를 저버린다면 나는 이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토론자였던 이양구 극작가는, 누구도 블랙리스트의 피해자가 아닐 수 없다고 얘기했다. 8개 부처 에서 8000여 명의 명단이 모인 것을 시작으로, 학술 연구 용역비까지 2만여 명의 리스트가 기능 했다고 지적했다. 국가보조금이 지급되는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진 사찰이자 감시였던 것이다. 문 체부에서 송부하지 않으면 국정원에서 보고하니, 각 기관에서 선제적으로 보내야 했던 리스트였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잃어왔던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어떻게 망가뜨릴까?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피해자예요?
바쁜 것 없는 와중에, 며칠에 걸쳐 글을 썼다. 자꾸만 손을 놓게 되는 까닭이었다. 이 막막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여전히 난 모르겠다. 거대한 폭력 때문인지, 평생을 무서워했던 권위인지, 부정 당한 나의 예술인지.
오성화 대표는 블랙리스트 사태가 국민으로서 거부당한 경험이었다고 얘기했다. 국민으로서 존재 를 지우는 이러한 행위들은 개인으로서는 견뎌내지 못할 거대한 국가폭력이었을 것이다. 발제자 였던 오동석 교수는 이 사건을 내란죄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을 참절할 목적으로 협박 에 가까운 행위를 통해 헌법 질서를 위태롭게 했다는 시선이었다. 크고 무서운 말을 들으면 슬쩍 발을 빼게 된다. 그저 나의 막막함이 저 폭력에 조금은 기대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그 권위의 메커니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두 차례 공공기관에서도 일한 적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웃기지 않는데 웃는 것을 심하게 잘하는 사람이었다. 청와대의 지시가 각 부처로, 또 각 기관으로, 그리고 심사에 참여한 개인으로 내려오는 과정은 어쩌면 그런 이들의 덕이었을 지 모른다. 그 행위가 의무 없는 일이 아니라는 판결 앞에서 나 같은 사람들은 면죄부를 얻은 걸 까? 그저 과도한 감정이입이라고 퉁치고 외면하려 애쓴다.
나는 나름 인디펜던트하게 음악을 만들지만, 홍대 부근 클럽에 소속된 적이 없고, 미디어아트 팀 의 일원으로 활동하지만 갤러리나 주류 미술계와 닿아있지 않다. 내가 프린지에서 스태프로 일하 게 된 것 역시, 예술가로서 나 같은 이들에게 프린지가 소중한 곳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사태는 다원예술지원정책을 비롯해 많은 토양을 고사시켰다. 이는 단순히 내 가 잘하지 못해서 인정받지 못한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그것은 적극적인 부정이었다.
이 모든 것들 앞에서 나는 다시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무서운 게 많을 때는 모르는 척, 해 맑은 척하는 게 좋은 탈출구가 되어준다.
<이전 글>
[프린지가 블랙리스트를 말한다] 1. 만남 - 우리는 정말 우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