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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곳을 텃밭이기 이전에 ‘민주주의 실험의 장’이라고 보고 있어요,
일단 텃밭을 통해서 마을 주민분들이 만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소일거리도 생기고, 운동도 되고, 먹을거리도 얻게 되는데,
이전에 농사경험이 있는 할머니들에게는 그곳이 자신의 모든 제주와 능력을 발휘하고 드러내는 무대가 되고 있어요.
지나가면서 관객들이 이를 보며 놀라기도 하고 물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참견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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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가 만난 공간] (5) 텃밭이 예술이 되는 곳 space 빔
2014년 5월 15일 / 참석 : 민운기, 물비, 차라 / 기록 : 물비
Q. 이런 질문 진부하실 텐데요, 스페이스 빔. 어떻게 출발했고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설명 부탁합니다.
스페이스 빔은 지난 1995년 ’지역미술연구모임’으로 출발하여 회원들끼리 공부도 하고, 미술 잡지도 만들고, 대안적인 전시 기획도 해오다가 상시적인 논의와 실천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난 2002년 1월 인천 구월동에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스페이스 빔은 중앙 집중적인 문화예술구조 속에서 인천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마련하기 위해 공공성과 지역성, 자율성을 모토로 지역의 미술 및 문화·예술 담론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시스템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면서 열린 만남과 생성적인 소통을 주선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9월에 근대 인천의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는 동구 창영동 배다리 마을에 있는 옛 인천양조장 건물로 이전하여 지역의 현안을 공유하고 지역의 문맥을 고려한 다각적 활동 속에서 바람직한 도시공동체 인천을 만들어 나가는데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스페이스 빔의 중요한 키워드는 지역인 것 같습니다. 처음 출발도 지역미술연구모임으로 하셨다고 했는데, 왜 지역인가요. 그리고 왜 인천인가요.
저희는 일단 예술 장르로 치자면 미술에서 출발했는데, 이 영역 안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잖아요. 그중에서도 중앙 중심의 구조와 욕망이 있는데, 모두가 이를 지향하다 보니 지방 또는 지역은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그러다 보니 문화적으로 열악해지고, 왜곡된 모습으로 드러나는 악순환이 계속됐어요. 그래서 내가 사는 도시나 마을 또는 특정 장소에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 누군가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구체적인 활동 거점으로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내가 사는 곳이 인천이니까요.
Q. 혼자 시작하시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분들이랑 같이 스터디 하신 것인지요?
지역미술모임을 1995년도에 만들었는데, 제가 나이는 제일 많았고. 그 당시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대학원 다니는 제 후배나 제자뻘 되는 친구들에게 같이 한 번 해보자고 제안도 하고 권유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이런 모임이 계속 이어지다가 여기에 상시적인 논의와 실천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공간에 필요성을 느끼게 되셨나요?
처음에 모임을 꾸리고 잡지도 만들다가 당시 인천에서 청년 작가들이라고 - 그때 저는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도 아니고 새내기 작가였죠. - 선배분들이 모여서 청년작가모임을 꾸렸는데, 그분들이 <대한민국청년미술제>라고 하는 전국 단위의 전시를 개최했어요. 무언가 침체된 지역 문화 또는 미술에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기획한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기존의 고답적인 미술 관념의 지역적 재생산 같은 행사로 비쳤어요. 이를테면 ‘청년’을 내세우긴 하지만 이렇다 할 문제의식도 안 보이고, “청년의 힘” 이런 것만 강조하는… 그런데 우연히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 행사를 저희가 맡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죠. 그래서 다 뜯어고쳤죠. 이름도 <인천포스트>로 바꾸고, 진행 과정도 모두 바꾸며 보여주기 식이 아닌, 그야말로 참여와 과정, 토론 중심으로 진행했지요. 그런데 이런 행사를 1주일 반짝하고 끝나게 되고, 그 나머지 기간은 또 이런저런 그렇고 그런 전시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작은 규모의 전시회든 어떤 담론의 장을 자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스페이스 빔을 열게 된 거죠.
Q. 인천포스트가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 계기가 되네요.
그렇게 하면서 전시는 전시대로 하고, 기존의 <시각> 지도 계속 만들어가고 스터디 모임도 그것대로 이어나가며 지역 미술 담론을 만들어 나갔죠.
Q. 민운기 대표님이 ‘느슨한 연계’를 통해 운영되는 스페이스 빔에 구심점 역할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인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거죠? 어릴 적부터 문화와 지역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저는 중3 때 강원도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왔고요, 여기서 성장기를 보냈죠. 대학은 서울로 갔고. 졸업하고 다시 내려왔어요. 처음부터 인천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내려와 보니까 모순적인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지역을 돌아보니까 문화예술 인프라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고, 미술만 하더라도 갤러리도 몇 개 안 되는데 보기에 좀 그랬었고, 작가들의 활동들도 보면 자기 안주에 머물러 있었어요. 이를테면 소재주의, 장르 중심으로 묶여서 연례적인 전시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무언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저 자신부터 제대로 하자며 관심을 끌어모은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Q. 실례지만 대학교 때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저는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어요. 미술로 출발한 거죠. 졸업 후에는 저도 비슷한 구조에 놓여 있었습니다. 다들 뻔하잖아요. 미대 나와서 개인전, 그룹전 하며 경력 쌓고, 어떤 이는 공모전 수상도 하고, 혹은 시간강사 나가다가 전임 교수도 하고. 저도 그러한 전철을 밟아나가는 궤도에 놓여 있다가 일탈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지역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하려다 보니까 단순한 창작활동만을 가지고는 안 되는, 왜냐하면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것도 없고, 돌아가는 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창작과 비평, 기획, 교육 등을 넘나들며 활동을 해왔고, 저는 이 모두가 작가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작가의 개념을 더 넓히고 싶은 것이죠. 그 연장 선상에서 지금 이런 활동을 하고 있어요.
Q. 2007년에 스페이스 빔을 구월동에서 배다리로 옮겼는데, 왜 이곳을 택한 건가요?
2007년도 1~3월까지 한겨울 동안 ‘도시유목’이라는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텐트 치고 돌아다니며 문화적 관점에서 도시를 탐사하는 그런 거였어요. 세 번째로 배다리 마을에 왔는데, 배다리 마을이 인천에 있어서 소중한 곳이라는 사실은 많이들 알고 계시죠. 그런데 이곳을 관통하며 마을을 갈라놓는 산업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더 빨리 지나가기 위해서 마을을 파헤치고 두 동강 내는 일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분개를 했지요. 한편으로 그럴 동안 우리의 예술은 무엇을 했나, 자책도 했고요.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부터 이를 막으며 우리가 원하는 마을과 도시를 만들어가자 해서 공간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어요.
Q.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힘들기도 했지만, 즐겁게 했어요.
Q. 여기에 도로가 생길 뻔했는데 어떻게 지켜내셨는지요?
이곳에 머물던 ‘도시유목’ 기간에 마을을 상징적으로나마 다시 잇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외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요. 그러면서 지역의 관심 있는 단체와 전문가분들이 참여하여 이 마을을 재조명하는 토론회도 열었어요. 여기에 힘을 얻은 주민들이 대책위를 꾸렸고, 시민 문화 예술 단체와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모임도 꾸려졌죠. 이후 주민들과 이 사안을 공유하면서 직접 공사 현장이나 인천시청을 찾아가서 항의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토론회를 열기도 하고. 릴레이 칼럼을 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축제를 벌이기도 하면서 할 방법을 모두 동원했지요. 그리고 스페이스 빔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나, 배다리 마을이 지닌 미학적 차원의 의미와 가치를 발굴하고 드러내어 공유할 수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오며 힘을 보탰습니다. 그렇게 해서 현재 도로는 지하화로 결정되었는데. 인천시 재정이 어려워 공사는 언제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Q. 배다리 도시학교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배다리 마을 지키고 가꾸기 운동 내지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민ㆍ관 합치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는데, 잘 돼지도 않는 데다가 정작 민 차원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분들과의 네트워크가 잘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이 또한 잘 안 되다 보니 어떤 사안이 생겼을 때 마을의 구성원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사실 마을 단위로 내려가면 온갖 것들이 얽혀 있어 어떤 한 가지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는 구조예요. 그런데 전문가들마저도 분야별로 다 쪼개져 있기도 하고, 이런 구체적 현장하고는 관계를 맺는 경우가 드물어요. 대학도 그렇고. 그래서 그나마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는 주변의 선생님들과 상의해서 도시에 대한 서로의 관심사와 연구 성과를 열린 형태로 나누는 장을 만들어보자 해서 재작년 시작했어요.
Q. 참여하시는 분이 강의를 듣는 것 보다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토론이 중요 하더라고요.
학생이나 수강생이 아닌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그동안은 돌아가며 발표도 하거나 어떤 도시 현안이나 정책, 사업과 관련된 분을 모셔서 이야기를 들은 후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해왔는데요. 올해는 ‘시시각각(市視各角)’이라고 하여 이슈가 있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살펴보고, 관련 내용도 들으며 서로가 생각하는 문제점이나 대안 등을 격의 없이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Q. 스페이스 빔에서 이루어졌던 활동들을 보니까 예술가보다는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 관심이 더 많고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전문 ‘작가’ 중심의 활동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요. 일반인 또는 시민 모두가 문화적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작가들의 또 다른, 확대된 역할들이 분명히 있다고 보고 있고, 그런 관점에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우리가 익히 아는 어떤 자기 완결성을 띤 ‘작품’이나 전시, 공연 이전에 세상을 어떻게 달리, 새롭게 볼 것인가 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봐요. 그리고 이를 공유하기 위한 적절한 소통의 언어와 형식을 고민하고 만들어 낼 필요가 있는데, 이를 굳이 과거의 틀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에요. 어떤 표현이든 행위를 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스페이스 빔은 역설적으로 ‘예술 작품 없는 예술 공간’이기도 해요.
Q. 저마다 생각하는 예술 활동은 다르잖아요. 왜 스페이스 빔은 경계를 두고 있지 않고, 예술 활동을 많이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오도록 하려는지요?
우리의 문화 예술 활동이 궁극적으로 다다를 지점은 우리의 삶의 공간이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죠. 그런데 전문 작가들의 특정한 형식에만 의존하여서 해온 결과 이렇다 할 성과도 못 내고, 여러 한계를 드러냈죠. 한편으로 특정의 예술 장르로 보면 전문 예술가라고 하여 우월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에는 일반시민들과 비슷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고, 일반인이라도 하더라도 특정 분야에서 전문 예술가들보다 더 대단한 분들이 있다고 봐요. 그래서 이를 위계적으로 가르기보다는 전문 예술가와 일반인 구분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 서로의 생각과 지혜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을 주선하여 그 속에서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저희 스페이스 빔이 역할을 맡고자 하고 있어요. 일례로 현재 철학스터디, 공간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와요. 그런 분들이 이런 공부를 한다고 꼭 예술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활해 접목해 나가는 거죠. 꼭 창작 활동을 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죠.
Q. 예술이라는 게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고 그런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말씀하신 건가요?
그런 것도 포함하여 여러 가지이겠죠. 삶과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일관성 있게 실천해 나갈 것인지, 이런 것들이겠죠. 이를테면 예술가들이 창작한다 하면서 그 엄청난 재료를 쓰고 막 버리며 분리수거도 안 하는 그런 경우가 많은데, 역설적으로 보면 환경을 고민하면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저희는 꼭 뭘 만들어서 보여 주는 게 급한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스스로 먼저 실천해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Q. 스페이스 빔은 여러 문제를 예술적으로 꼭 그렇게 접근하는 건가요?
저는 예술 창작이든, 전시든, 활동이든, 그런 건 하나의 과정이고 단계라고 봐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과 목적과 지점이 있잖아요. 그것을 위해 작품을 만들 수도 있고. 작품이나 활동을 그것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죠.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 다가가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게 궁극적인 지점인데, 수단이 목적이 되어서 그런 능력을 평가받으려 하거나, 양적인 확산만을 이루려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스페이스 빔은 예술의 근본을 따지는 가운데 궁극적인 역할을 다시 한 번 환기하고자 이런 식으로 접근하고 있지요.
벽화읽기/민운기
Q. 벽화 일변도의 공공미술에 대해 이야기하신 칼럼이었는데. 공공미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일단은 기존의 미술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고 또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실험이 이루어지고 사례가 소개되는데, 그것이 ‘공공미술’이든 ‘커뮤니티 아트’이든 장르화 되는 것을 경계해요. 그것이 특정의 활동 형태만으로 구분지어 장르화, 제도화되면 그것이 극복하고자 하는 애초의 대상이 그대로 남아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대안도 결국 이런저런 활동 형태의 하나로 머물게 된다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arts for public’이나 ‘arts for community’가 중요하다고 보고요. 이를 위해서는 어떤 art도 모두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무엇과 어떻게 접속하고 배치되느냐에 따라 공공성 또는 공동체성을 띨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고요. 그런 면에서 ‘벽화’ 자체가 공공미술은 아니라고 보고, ‘공공미술’ 또는 ‘예술의 공공성’을 이것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봅니다.
Q. 그런 취지와 맥락에서 지금 현재 하는 활동이 있을까요?
이번 주 토요일 <인천시민 엉뚱삐딱 도시 상상ㆍ혁신 바자회>라는 행사를 열어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그러한 문제의식과 고민이 다 여기에 맞물려 있는데요. 작가와 일반 시민 구분 짓지 않고 모두가 시민의 입장에서 도시를 살아가면서 도시를 변화시키기 위한 주체로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사례를 가지고 나와 교류하는 장터예요. 그리고 곧 있을 지방선거와 맞물려 이러한 관점에서 후보들을 판단하고, 후보자들도 시민들이 도시에 대한 어떤 기대와 변화를 바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고요.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이 행정이나 정치인들의 대상이 아닌, 도시의 주인으로서 자기 힘과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향성 속에서 이런 기획을 시도한 것이죠.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지하화로 결정된 산업도로 부지에서는 갈라진 두 마을을 어떻게 다시 잘 이을 수 있을까,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서 행정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고요. 그 과정에서 주민들과 마을 텃밭도 가꾸고, 정자도 세워 일상적인 만남이 가능하도록 하면서도 이를 거점으로 생태 시설과 프로그램도 만들고, 영화도 보고, 작은 파티도 하는 등 예술가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서 수평적인 만남을 통해 더불어 사는 의미와 가치를 경험하고 있어요.
Q. 텃밭은 배다리 공동체에서 조성을 한 건가요?
그것도 사연이 긴데 산업도로를 지하화하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막혀있던 철제 울타리를 모두 다 치우면서 샛길도 만들고, 코스모스와 유채꽃밭을 만들더라고요. 여기에서 도로를 둘러싸고 싸워온 게 제1라운드라면, 이러한 꽃밭 조성과 관련한 싸움이 제2라운드라고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하면 지하화 공사 전까지 임시 기간 동안 이 부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저희는 자연스럽게 생태가 복원되면서 주민들 간의 커뮤니티를 활성화할 수 있는 실험의 장이자 기회로 삼아 그런 경험이 나중에 이곳을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에 대한 디자인 설계에 반영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행정은 예쁜 꽃을 심어 단지 보여만 주려는, 그러면서 주민들을 알게 모르게 구경꾼으로 만들게 되면서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 것이죠. 즉 저희는 이런 관점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구경만 하지 않고, 다각적인 공간 침투를 시도했어요. 처음에는 가을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기도 하고, 배다리 축제 때에는 바람개비를 만들어 세우기도 하고. 새싹이 돋아나기 전인 3월에는 그곳에서 벼룩시장도 열었어요. 그러다 저희랑 같이 활동하시는 주민 한 분이 이곳을 텃밭으로 쓰게 해달라고 구청에 제안해서 받아들여지면서 가꾸게 된 것이죠.
현재 한 25가구가 분양을 받아 열심히 가꾸고 있는데, 저는 그곳을 텃밭이기 이전에 ‘민주주의 실험의 장’이라고 보고 있어요, 일단 텃밭을 통해서 마을 주민분들이 만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소일거리도 생기고, 운동도 되고. 먹을거리로 얻게 되는데, 이전에 농사경험이 있는 할머니들에게는 그곳이 자신의 모든 제주와 능력을 발휘하고 드러내는 무대가 되고 있어요. 지나가면서 관객들이 이를 보며 놀라기도 하고 물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참견도 하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관심이 자기 텃밭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 텃밭 밖은 또 다른 누군가의 텃밭인데, 땅에 대한 욕심이 생겨 자기 텃밭 조금씩 넓히면서 다른 분의 텃밭이 줄어드는 걸 생각 못 하는 거죠. 그러다가 나중에 발각되어 원 위치시키고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관심의 범위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고 있지요. 지난가을에는 텃밭 옆 둔덕까지 너도나도 텃밭으로 활용하면서 결국 상의를 해서 그곳을 꽃밭으로 만들기로 하고 돌담도 쌓고 그랬어요. 자잘한 사건이나 문제가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이를 없애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고, 그런 시행 착오나 경험이 주민들을 조금씩조금씩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관통해야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Q. ‘민주주의 실험의 장’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은 어디서 보람을 느끼시나요?
글쎄요. 행정의 대상이자 예술에서도 관람자로 머물러 있던, 그리고 직접적인 자기 이익과 연관되는 일이 있을 때에만 관심을 두던 주민분들이 마을 일에 관심을 두고 나설 때 나름의 보람을 느끼죠. 그만큼 제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이 생기기도 해서요. 한편으로 이곳 배다리 마을이나 구도심을 그저 낙후된 곳으로만 여겼던 사고가 바뀌어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남다른 가치와 매력을 느끼는 분들이 늘어가는 것도 저에게는 기쁜 일이고요. 또 한편으로 더는 서울이나 중앙을 지향하지 않고 저희처럼 특정 도시나 지역 단위에 거점을 두고 다각적인 문화 예술 활동을 펼치는 공간과 주체들이 많아지는 문화지형의 변화도 고무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간 운영과 활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것도 저희에게는 용기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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